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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숲향 이야기

비 오는 날에 산수유

향곡[鄕谷] 2021. 3. 29. 13:50

 

비 오는 날에 산수유

 

 

 

산수유는 이른 봄날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대표적인 봄꽃이다. 산(山)은 산에서 자라고, 수(茱)는 열매가 빨갛다는 뜻이고, 유(萸)는 열매를 그냥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열매는 귀한 약재로 여겼다. 시인 김종길의 시 '성탄제'에서 산수유가 나온다. 할머니는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아버지는 한밤중 산길에서 눈을 헤치어 산수유 열매를 따왔다. 산수유 열매는 그렇게 목숨을 구하였던 귀한 약재였다.   

 

삼국유사 경문왕 편에 산수유가 나온다. 국선(國仙)이었던 청년 낭(郎)은 현안왕의 사위가 되었다가 왕위를 이어받아 경문왕이 되었다. 왕의 귀는 점점 길어 나귀의 귀처럼 되어갔다. 이때 아랫사람 중 하나가 그 사실을 알고 참지 못하였다. 그는 절 뒤에 있는 대나무 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했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하였다. 왕은 대나무를 베어 내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 뒤로는 그런 얘기가 들려오지 않았다. 비밀 얘기는 산수유에게 할 일이다.

 

산수유 꽃송이는 제법 길고 날씬한 꽃잎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꽃송이에 꽃잎과 꽃술이 숲 속 궁전처럼 신비롭다. 산수유는 만나는 누구라도 꽃그늘에서 쉬어 가라 한다. 비 오는 날 산수유는 빗물에 흠뻑 젖었다. 꽃과 물이 하나가 되었다. 빗님을 만나서도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눈다. 산수유는 자태가 곱고 마음이 고울뿐 아니라 한번 맺은 연을 귀중하게 여긴다.    

 

 

 

산수유 (202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