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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숲향 이야기

식물의 화학무기

향곡[鄕谷] 2021. 6. 7. 11:45

 

식물의 화학무기

테르핀, 타닌, 타감 물질, 알칼로이드 물질, 유독물질

 

 

 

산길은 늘 싱그럽다. 울창한 숲길에 들면 더욱 그렇다. 나무가 우거진 곳도 그렇지만 풀을 베어낸 곳에서 싱그런 냄새가 더 많이 난다. 식물은 봄에 새잎을 낼 때는 크기를 키우기 위해 얇고 부드러운 잎을 낸다. 그러다가 얼마큼 자라면 잎 속에 전에 없던 딱딱하고 고약한 물질을 더하여 방어를 하게 된다. 이것이 테르핀(Terpene)이다. 우리가 숲 속에 들 때 코를 자극하고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향기가 테르핀이다. 민들레도 배추도 소나무에도 테르핀이  있다. 삼림에서 발생하는 테르핀 정유물질의 성분이 피톤치드(Phytoncide)이다. 피톤(Pyton)은 '식물', 치드(Cide)는 '죽이다'는 뜻을 가진 말을 합성한 것으로 항균 항산화 항염증 작용을 하는 청량제이다. 편백나무, 구상나무, 삼나무, 화백나무, 전나무, 향나무 등 상록 침엽수에서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백나무 / 영주산 (제주도 서귀포. 2018.11.17).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구상나무 / 설악산 (2015.6.21).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한국특산식물

 

 

 

나무는 잎에 타닌을 만들어 저장한다. 타닌은 소화기능을 낮추거나 민감도를 떨어뜨려 천적이 덥석 달려들지 못하게 한다. 나무는 씨앗을 지키는데 타닌을 이용한다. 와인을 마실 때 약간 떱떨한 맛을 두고 타닌이 들었다고 하는데, 커피 녹차 채소에도 타닌이 있다. 과일 중에는 포도껍질에 타닌이 많다. 도토리 떫은맛도 타닌인데 물에 담가 우려낸다. 솔잎에는 배탈에 좋은 타닌이 있어 스님들이 생솔잎을 씹기도 한다.

 

 

 

포도 껍질에는 타닌이 많다

 

 

도토리에는 타닌이 많아서 우려내고 난 뒤에 음식을 해서 먹는다

 

 

 

식물에는 자신과 경쟁하는 다른 식물이 발아하고 크는 것을 억제하여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있다. 이런 물질을 타감물질(他感物質)이라 하고 타감 물질에 의한 억제 효과를 타감 효과라 한다. 가래나무 주위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 발견되었고, 소나무 주위와 단풍나무잎 떨어진 주위에도 풀들이 자라지 않는다. 허브식물의 독특한 향기도 타감 물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마늘, 고추, 참깨, 커피도 향을 이용해 넓게는 모두 허브식물이다. 조류, 세균, 곰팡이가 내놓는 화학물질도 타감 물질이다.

 

 

 

가래나무(경기도 가평. 2013.9.16) / 타감물질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나무가 가래나무이다

 

 

소나무의 타감작용으로 소나무 밑에는 풀들이 자라지 않는다 (강원도 춘천 금병산)

 

 

 

동물의 중추신경을 교란시켜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물질들은 대부분 알칼로이드 물질이다. 약리 활성화가 크고 독성의 정도에 따라 농약이나 의약품으로 만든다. 니코틴이 있는 담배, 모르핀이 있는 아편, 택솔이 있는 주목이 있고, 그밖에 협죽도, 고삼, 회화나무 등이 알칼로이드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주목(방태산) / 주목에서 나는 택솔은 항암제로 쓴다

 

 

 

풀에는 앞에서 예로 든 화학물질이 독성이 약한 것이라면 정도에 따라 약으로 쓰기도 하지만 독초로 부르는 것이 있다. 나물이라 이름이 붙었지만 독이 강해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요강나물, 동의나물, 피나물, 삿갓나물, 윤판 나물이 있다. 할미꽃은 전체에 독이 있어 나물로 먹으면 안 되지만 뿌리는 약으로 쓴다. 예전에 재래식 화장실에 할미꽃 뿌리를 넣기도 했다. 바람꽃 종류는 모두 독이 있다. 애기똥풀은 노란 즙에 강한 독이 있다. 박새는 독이 강해 어린잎도 나물로 먹으면 안 되고, 뿌리는 농약 재료로 쓴다. 둥굴레와 닮은 애기나리는 줄기와 뿌리에 독이 있고, 산마늘과 잎이 비슷한 은방울꽃도 독이 강하다. 천남성은 옛날에 사약의 재료로 썼듯 전체에 독이 있지만 뿌리는 약으로 쓰기도 한다. 나무에는 철쭉과 옻나무가 있다. 철쭉은 독이 있어 먹지 않으며, 옻을 타는 사람은 옻을 먹으면 안 된다.

 

 

 

 

동의나물 (2008.5.17. 강원도 인제. 방태산)

 

 

삿갓나물 (2020.4.8.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

 

 

애기나리 (2019.5.3. 경기도 성남. 청계산)

 

 

 

나무가 가진 화학무기는 치명적인 것이 적다. 스스로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풀은 독성 물질이 있는 것이 많이 있다. 풀은 1년밖에 살지 못하여 꺾이거나 상하는 경우에는 치명적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다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더 이상 살 수가 없이, 풀은 생이 끝나기 때문에 방어무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식물의 화학무기를 삼림욕, 식음, 향이나 약으로 이용하고, 독으로 생명을 위협당하기도 한다. 식물이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식물이 살기 위한 방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