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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기/숲향 이야기

선비들이 나무와 꽃을 사랑한 뜻

향곡[鄕谷] 2021. 6. 15. 17:15

 

선비들이 나무와 꽃을 사랑한 뜻

회화나무, 은행나무, 매화나무, 배롱나무, 소나무, 목련, 국화, 연꽃

 

 

 

조선의 선비들은 나무와 꽃을 통해서 마음의 수양을 얻고자 하였다. 꽃은 단순한 완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면 앎을 이룰 수 있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수양 방법으로 생각하였다. 조선시대 세조 때 문신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보면 그러한 내용이 나와 있다. 양화소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이다. 그는 화초를 기르면서 알게 된 꽃과 나무의 특성, 품종, 재배법을 정리하였다. 그는 화가이기도 하고 농업서도 짓고, 훈민정음에 대한 해석과 용비어천가 주석에도 참여하였다. 그의 책을 포함하여 여러 책을 읽으며 조선의 선비들이 가까이하였던 나무와 꽃을 정리한다.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중국 원산인 회화나무는 한자로는 괴(槐)이고 그 꽃이 괴화(槐花)인데, 괴화의 중국 발음 화이화가 변하여 회화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한다. 나뭇가지가 뻗는 것이 제멋대로인데, 이를 두고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하여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회화나무는 출세를 의미하는 나무요, 선비가 사는 곳에서 볼 수 있었던 나무다. 그래서 선비가 사는 마을, 서원, 사당 등에 심었고 궁궐에도 심었다. 창덕궁에 들어가면 왼쪽에 보이는 큰 나무가 회화나무다. 천년이 넘게 자라는 이 나무는 문묘에 가도 볼 수 있다. 

 

 

 

회화나무 / 창경궁 (서울 종로. 2019.6.28)

 

회화나무 / 서울숲 (서울 성동구. 2019.6.13)

 

 

 

 

학문을 수행하는 곳에 심었던 은행나무

 

 은행나무에 은행(銀杏)은 흰 살구란 뜻이다. 노랗게 익은 열매가 작은 살구처럼 보여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꽃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으니 벌 나비가 찾아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바람이 도와 후손을 만든다.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공자를 모시는 문묘(文廟)에 심어, 문묘가 있는 곳을 행단(杏亶)이라 불렀다. 행단은 학문을 수행하는 곳으로 서원에도 은행나무를 심어서 귀하게 여긴 것이다. 서울 문묘에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양평 용문사에서는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은행나무 / 문묘 (서울 종로구. 2019.12.11)

 

은행나무 / 볼음도 (인천 강화. 2016.10.1)

 

 

 

 

추운 역경을 이겨내는 군자의 꽃, 매화나무

 

매화나무는 무더기로 모여서 피지 않고 순결한 모습으로 은은한 향기를 내며 핀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성정을 지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선비의 의연한 자세와 같다고 하여 군자의 꽃으로 여겼다. 억압과 불의에 물들지 않는 지조와 절개가 있고, 맑은 향을 퍼뜨리는 고고한 맛이 있어 선비의 모습을 매화에서 찾았다. 그래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시인묵객들은 이들 셋을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였다. 그래서 선비들은 매화를 가까이 두었고, 매화가 피는 봄이면 탐매 여행을 다니며 곳곳에서 이름난 매화나무를 구경하였다.

 

 

 

매화나무 / 전남 광양 (2006.3.25)

 

매화나무 / 경기도 성남 2020.3.21)

 

 

 

 

겉과 속이 같은 배롱나무

 

나무 이름은 처음에 '백일홍나무'라 부르다가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배롱나무 꽃은 뙤약볕이 따가운 한여름에 볼 수 있는 꽃이다.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은 '노을이 곱게 물든 날 배롱나무를 보면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품격이 최고'라 하였다. 배롱나무는 껍질이 없어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표리 부동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하였을까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은 배롱나무를 보고, '서로 백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 너를 상대로 술 마시기 좋아라'하였다. 배롱나무로 어사화를 삼기도 했고, 일편단심이나 무욕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래서 사당이나 서원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배롱나무 / 서울 남산 (2019.8.13)

 

배롱나무 / 백련사 (전남 강진. 2020.1.14)

 

 

 

 

풍상에 맞서는 인내심을 키운 소나무

 

소나무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오래되었지만 소나무를 귀히 여긴 것은 조선시대이다. 궁궐을 짓고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였지만 그렇게 많지 않아 소나무를 베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소나무는 양수이고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강인한 나무다. 충신의 대명사로 여기고 인격의 완성자를 소나무에 비교하였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에게 훌륭한 인재가 따른다며 그 훌륭한 사람을 송백(松柏. 소나무와 잣나무)이라 하였다. 소나무는 문인들이 사랑한 문인목이고, 굳건한 기상을 느끼며 풍상에 맞서는 나무로 여겨 선비들이 좋아하였다.

 

 

 

소나무 / 강원도 고성 (2012.6.3)

 

소나무 / 주왕산 (경북 청송. 2014.6.7)

 

 

 

 

학문과 지조의 품격, 목련

 

목련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겨울눈이 부드러운 털로 덮은 붓처럼 생겼다. 그래서 목필화(木筆花)라 부른다. 또 이른 봄에 하얀 꽃을 피우는 고고한 학의 품격에 비유한다. 목련 꽃을 북향화(北向花)라 부르는데, 꽃이 필 때 북쪽을 향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와 달리 꽃봉오리 아랫부분에 남쪽에서 비치는 햇볕이 닿으면 반대편보다 세포 분열이 더 빨리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끝이 북쪽을 향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해를 따라가지 않는 지조 있는 모습으로 여긴 것이다. 붓을 닮은 겨울눈과 해를 따라가지 않는 지조의 모습으로 선비들이 좋아하는 나무가 되었다.

 

 

 

백목련 / 서울 송파구 (2018.4.3)

 

목련 / 서울 송파구 (2018.4.3)

 

 

 

 

 

숨어 사는 선비, 국화  

 

국화는 여러 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찍 심어 늦게 피는 것을 군자의 덕이라 하였고, 서리를 이겨 꽃을 피움은 강직한 기상이라 하였다. 국화는 숨어 있는 선비란 뜻으로 은일자(隱逸者)라 한다. 가을이 되면 모든 초목들이 시들고 죽는데 국화는 고결한 지조를 품고 핀다는 것이니, 선비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손님을 모시고 국화차나 국화주를 마시는 국화음(菊花飮)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정약용은 촛불로 국화를 벽에 비추어 그림자를 완상 하기도 했다. 서서히 천지의 기운을 모아 자연의 정기를 흡수하는 장면이 아름답기만 하다.

 

 

 

산국 / 남한산성 (2019.10.12)

 

벌개미취 / 남한산성 (2020.9.28)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 연꽃

 

송나라 유학자인 주무숙(周茂叔)의 '애련설(愛蓮說)'에는 연꽃을 나타내는 말들이 다 녹아 있다.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정(淨)한 물에 맑게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네. 속은 허허롭게 비우고도 겉모습은 꼿꼿이 서서, 넝쿨 지지도 않고 잔가지 같은 것도 치지 않는구나. 향기는 멀수록 더 맑으며, 청정하고 깨끗한 몸가짐, 높이 우뚝 섰으니 멀리서 우러러볼 뿐, 가까이서 감히 어루만지며 희롱할 수는 없어라'. 연꽃은 한여름에 물가에서 피는 것이기에 그 기회는 적다고 하지만, 초여름 연꽃이 피는 모습을 찾아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연꽃 / 전남 무안 화산백련지 (2007.9.1)

 

연꽃 / 세미연 (경기도 양평. 2017.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