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관기피
나무의 거리 두기, 햇빛을 나누는 공존법
나무 우거진 숲 속에서 나무 위를 쳐다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끄트머리를 싹둑 자른 것처럼 한 뼘 정도 하늘이 보이는 공간을 볼 수 있다. 비슷한 높이로 자라는 나무라면 더 잘 볼 수 있다. 나무 꼭대기가 서로 닿지 않고 나무줄기나 잎 끄트머리가 뚜렷한 영역과 경계선까지만 성장하는 것으로 수관기피(樹冠忌避)라 한다. 수관(樹冠)은 나무줄기 위쪽 끄트머리인 우듬지를 말하는 것이고, 기피(忌避)는 피한다는 것이니, 나무 꼭대기에 있는 줄기나 잎이 서로 닿는 것을 피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수령의 나무가 같이 자랄 때 주로 발생하며, 특히 같은 수종인 경우 그러한 현상이 더 잘 나타난다. 소나무, 두릅나무, 녹나무는 그러한 현상이 더 잘 나타나는 나무이다.
수관기피는 나무의 거리두기이다.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옆에 사는 나무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그것을 감지하여 그 방향으로 뻗는 것을 멈춘다. 나무는 잎이 다른 잎과 부딪히지 않게 모양을 내고, 아래위에 있는 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배려하려 모양을 내어 빛을 나눈다. 수관기피도 그런 연장선상이다. 가지나 잎은 더 이상 다른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자라는 것을 멈춘다. 거리두기를 하여 햇빛을 나누고, 바람에 흔들릴 때 서로 부딪혀 가지가 상하는 것을 막고, 해충이나 병충해가 옮겨서 다른 나무에 건너가는 것을 막는 이중삼중의 이로움이 있다. 수관기피는 제한된 공간과 환경에서 각자의 공간을 지키고 서로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나무가 터득한 방법이요, 건강한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이다.
나무는 큰 나무라 하여 작은 나무를 건드리는 법이 없다. 거리두기를 하여 하늘을 나눠 가지니 햇살이 그 아래 작은 나무로 가고, 다시 작은 나무는 풀밭에 남은 빛을 나눈다. 자기 영역에서 남을 침법하는 법이 없는 아름다운 공생이다. 그리고 각자 살아가며 내면을 살찌운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에게 잠잘 곳, 숨을 곳, 먹을 것을 나누고, 마지막에는 뭇 생명이 자랄 대지에 아낌없이 몸을 바친다. 거리두기는 공멸을 피하기 위해 나무가 터득한 공존 방법이요, 수억 년이 흐르며 얻은 나무의 생존방법이다. 욕망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절이다. 수관기피는 같이 사는 방법을 일깨워 주는, 나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귀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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