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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27. 남양주 홍릉과 유릉 2. 유릉(裕陵.순종), 영원(英園.영친왕), 의친왕묘, 덕혜옹주묘

향곡[鄕谷] 2022. 1. 10. 20:25

 

왕릉과 숲 27

 

남양주 홍릉과 유릉 2. 유릉(裕陵. 순종), 영원(英園. 영친왕),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유릉(裕陵) : 조선 27대 순종(純宗. 고종과 명성왕후 아들. 1874.8-1926.4(52세). 재위 3년 1개월(1907.7-1910.8))과 원비 순명(純明) 왕후(1872-1904.32세)와 계비 순정(純貞) 왕후(1894-1977.72세)의 능(합장 능)

영원(英園) : 영친왕( 英親王. 이은. 懿愍황태자. 고종과 엄귀인의 아들. 1897-1970(73세)과 비 이방자 여사(1901-1989.88세)의 능(합장원)

의친왕 묘(義親王墓) : 의친왕(이강. 고종과 귀인 장(張)씨 아들. 1877-1955. 78세)과 비 김수덕 여사(1881-1964(83세)) 묘(합장묘)

덕혜옹주 묘(德惠翁主墓) : 덕혜옹주(고종과 귀인 양 씨의 딸. 1912-1989(78세)의 묘(단묘)

 

 

순종이 묻힌 유릉은 경춘선 금곡역에서 1㎞ 정도로, 고종이 묻힌 홍릉과 같이 있다. 홍릉 뒤편으로는 영원에 영친왕 부부, 그 뒤로 의친왕 부부와 덕혜옹주가 묻혀 있다. 유릉 재실은 곡물을 넣는 창고가 있을 정도로 크고 넓다. 재실에서 능으로 난 문을 나서면 큰 전나무와 우물이 보인다. 전나무의 속명 '높다'와 '올라간다'처럼 높고 크다. 모여서 자라면 숲이 아름다운 나무인데, 한 나무만 외로이 섰다. 능 쪽으로는 지금까지 보던 석물과 다른 모양인 키가 크고 규모가 큰 이국적인 석물이 도열하고 있다. 홍릉과 유릉은 친일파 대신이 터를 잡고 총독부 이왕직 직원들이 조성한 능이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도 일본이 설치한 이왕직이 중심이 되어 기록하였다. 문무인석은 크고 무표정하다. 왕릉에 있는 정자각 대신 서 있는 침전은 낯설고, 침전의 잡상은 왕릉보다 많은 5개이다. 순종의 능은 꼭대기가 겨우 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 오리나무와 참빗살나무가 서 있는 곳을 돌아가면 홍릉이고, 홍릉 동쪽으로는 영친왕 묘와 의친왕 묘로 가는 사잇문이 있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호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해에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순종은 이름뿐인 황제였다. 일제는 친일 매국노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등을 중심으로 매국단체 일진회를 앞세워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때 가장 앞장선 자가 이완용이라면 그 밑에 비서실장으로 일을 도모한 소설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이 있고, 막후에서 이완용과 친일 경쟁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일인자는 윤덕영이다. 윤덕영은 순종의 계비 순정왕후 큰아버지로 시종원장이었다. 조선시대 직제로는 도승지, 요즈음으로는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자리로 조선을 일본에 넘기라고 순종을 압박하였다. 순조부터 헌종, 철종 때까지는 장동 김 씨가, 고종 때는 여흥 민 씨가, 마지막에는 해평 윤 씨 왕실 세도정치가 이어서 나라를 뒤흔들었다. 일제가 식민지로 우리나라를 병합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국방력과 우리 왕실과 노론 집권세력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순종은 폐하(陛下)에서 다시 전하(殿下)가 되었다. 황제는 높은 계단(陛) 아래에서 알현할 수 있어 폐하이고, 전하의 전(殿)은 왕이 거처하는 궁전으로 덜 높은 위치에 있다. 순종은 유폐되었기에 합병은 내 뜻이 아니라 하였지만 공허한 말이었다. 그는 후손도 없다. 왕조도 나라도 그렇게 절멸하였다. 순종이 죽고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백성들의 성난 외침이었다.

 

영친왕 이은은 고종의 넷째 아들이고 순종의 이복동생이다. 생모는 엄귀인으로 빈(정 1품) 다음의 내명부 후궁 품계가 귀인(종 1품)이다. 황제의 아들에겐 친왕(親王)을 쓰고, 왕호로 영(英)을 붙여 영친왕이다. 이은은 1907년 열 살 때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 일본 육사를 나오고 육군 중장을 받았으나 그 역시 허울의 계급이었다. 생모(엄귀인)가 죽어도 귀국하지 못하고, 순종이 죽자 조선 이왕이라 불렀다. 일본은 고종이 이은의 약혼녀로 내정한 여인을 파혼시키고, 마사코(이방자)를 정략결혼시켰다. 영친왕 이은은 일본 연금으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 왕족 자격과 국적과 재산이 박탈되었다. 해방 후 한동안 귀국이 거부되었다가 1963년 국적을 회복하여 귀국하였다. 귀국 후 영친왕은 7년간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고, 이방자 여사는 봉사활동에 전념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왕조가 없는 왕과 비의 죽음이었다. 묘는 홍살문과 정자각을 갖추어 대접을 하였다.

 

영친왕 맏아들 이진은 난 이듬해 죽어 할머니(엄귀인) 곁인 청량리 숭인원에 묻히고, 둘째 이구는 영친왕 묘 바로 옆 회인원에 묻혀 있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만년에 귀인 양 씨에게서 얻은 딸이다. 정실이 낳은 딸은 공주이고, 후궁이 낳은 딸이 옹주이다. 고종은 정성을 다해 키웠으나 너무 늙어 얻은 딸이었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일본 유학을 갔다가 어머니 죽음에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았다. 일인과 정략결혼을 하여 딸을 낳았으나 정신질환으로 결혼을 유지할 수 없어 이혼하였고, 딸은 실종되었다. 1962년 국적을 되찾아 귀국하였지만 정신질환에 실어 증세가 겹쳐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영친왕 묘엔 기울기가 기운 소나무가 홍살문에 기댈 듯이 서 있다. 그곳을 나오면 논이 보이는 길을 따라 의친왕 묘로 간다. 신나무가 길가에 늘어섰다. 옛 문헌에서 풍(楓)이 단풍나무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신나무를 이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풍(楓)의 훈(訓) '싣나모'가 신나무가 되었다. 단풍이 아름다워 색(色)나무가 신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소나무 숲이 있는 울타리에는 조선 역대 왕릉 설명과 덕혜옹주 얘기를 걸어 놓았다. 엄귀인이 을미사변 이후 영친왕을 낳자 스무 살이나 많은 의친왕은 생모 장귀인과 궁밖에 나가 살았다. 장귀인은 혹독한 린치 끝에 죽었고, 고아인 이강은 생명의 위협 속에 살았다. 성장해서는 유학이란 이름으로 일본과 미국으로 떠나고 고종과 엄귀비가 오랫동안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나 190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반발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비밀 독립운동 조직인 대동단을 결성한 김가진은 과거에 농상공대신을 하였고 망국 후 남작까지 받았으나 자괴감이 들어 적극적으로 독립 활동을 하기로 하고 상해로 망명하였다. 김가진 망명 후 항일에 거의 유일한 왕족인 의친왕 이강이 망명을 시도하였으나 중국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순종 사후에는 이강(의친왕)이 다음 승계 순위였으나 일제가 견제를 하였고, 엄귀인과 이완용 일파의 정략으로 영친왕이 승계자가 되었다. 의친왕은 일제의 관심에서 벗어나려 탕아 노릇을 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정부에서 왕실 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을 천대하여 어렵게 살았다. 6.25 사변 후 1.4 후퇴 때 70대 후반 노구로 부산으로 내려갔으나 돌보는 사람이 없이 어렵게 살다가 그때의 영양실조로 죽었다. 서삼릉에 비석도 없이 가묘로 묻혔다가 딸의 노력으로 홍유릉으로 이장하여 의친왕비와 합장하였다. 의병을 독려하고, 3.1 운동 때 손병희와 독립을 모의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의친왕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순종은 후손이 없고, 영친왕은 아들이 죽은 후 후손이 끊어졌으며, 의친왕의 후사들 중 일본에 귀화한 사람도 있고, 일찍 죽은 사람도 있지만 지금 왕가에 살아있는 후손은 모두 의친왕계 후손들이다. 왕실과 노론 관리들의 친일파들 얘기 속에 독립운동가 왕족을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의친왕 묘는 겨울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독립운동가 의친왕을 만나러 또 가야겠다. 따스한 봄이 올 날을 기다린다. 

 

 

 

 

유릉 재실

 

 

 

유릉

 

 

유릉 침전

 

 

유릉 문무인석

 

 

유릉 동물상 석물

 

 

유릉 재실과 전나무

 

 

오리나무

 

 

소나무와 쪽동백나무

 

 

영원(영친왕과 이방자여사 무덤)

 

 

영친왕과 이방자여사 무덤(합장원)

 

 

덕해옹주묘

 

 

의친왕묘와 덕혜옹주묘 가는 길

 

 

신나무

 

 

소나무

 

 

참빗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