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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나무

잎이 늦게 나오는 나무

향곡[鄕谷] 2022. 7. 20. 15:17

 

잎이 늦게 나오는 나무

대추나무, 배롱나무, 자귀나무

 

 

 

봄이 한참 되었는데 싹이 늦게 나는 나무들이 있다. 대추나무가 그런 나무다.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이 되어야 가지에서 겨우 싹이 나오니 사람들은 이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지를 꺾어보기도 한다. 꽃도 6~7월이 되어야 피니 늦다. 원래 더운 곳에서 자랐던 나무라 기온이 올라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대추나무 꽃은 개화가 늦어 도리깨질을 할 때쯤 꽃이 맺히고, 대추나무 꽃이 피면 모내기를 서둘러야 한다. 대추나무 순이 늦게 나오니 다른 나무의 눈을 밖으로 쫓아내고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싹이 늦게 나고 느릿느릿 움직인다고 양반 나무라고도 한다. 작은 연황록색 꽃은 비바람이 불어도 꿈쩍도 않고, 열매를 맺고서야 꽃이 떨어진다. 싹은 늦게 나도 열매는 빨리 익어 9월이면 익는다. 그래서 대추를 따고서 벼를 거둔다. 대추나무에 열매가 더 많이 달리라고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수액의 이동이 잘 안 되어 열매가 많이 열린다. 대추는 열매가 많이 달리고, 뿌리에 달린 밤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손 번성과 세대 연결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제사에 쓰고, 폐백 때 시어머니가 대추나 밤을 듬뿍 집어서 신부 치마에 던져주며 자식을 많이 낳으라고 한다.

 

 

 

대추나무 / 경기도 성남시 위례 (2020.5.1)

 

 

대추나무 꽃 / 경기도 성남시 위례 (2020.7.3)

 

 

대추나무 / 경북 영주 (2007.9.9)

 

 

 

배롱나무도 잎이 늦게 나오는 나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거의 백일에 걸쳐 붉은 꽃이 핀다고 백일홍(百日紅)나무라 하다가 배롱나무가 되었다. 여름에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열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는데도 더운기가 있는 줄 모른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쪽이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데 키가 크지는 않다. 수피는 얇아 추위에 민감하다. 그래서 중부지방에서 키우는 배롱나무는 짚으로 싸주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볕이 잘 들고 바람이 막혀 있는 곳이면서 습기가 적은 모래땅을 좋아한다. 배롱나무는 잎이 늦게 난다. 그래서 봄이 되어 동네에 잎이 나지 않은 배롱나무를 보면 이식 조건이 안 좋아 죽은 것인지 잎이 늦게 나는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 배롱나무는 잎이 나고 난 뒤에 이식하면 대부분 고사한다. 우리 동네 조경수로 심은 배롱나무들이 그런 경우일 것 같다. 다른 나무와 달리 활착도 늦어 배수관리를 잘하여야 한다. 식물의 개화 기간은 대부분 열흘 정도인데, 배롱나무는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길고도 아름답다. 꽃이 아름다우면서도 소란스러움은 없다. 그래서 오래된 절이나 서원에서 배롱나무를 심는다.  

 

 

 

배롱나무 / 창경궁 (2019.6.28)

 

 

배롱나무 / 전남 구례 화엄사 (2010.8.5)

 

 

배롱나무 / 경기도 남양주 마현마을 (2018.8.30)

 

 

 

자귀나무도 기동이 늦다. 진달래가 피었다가 지고, 철쭉이 한창 피었다가 지려는 5월 하순에야 새순이 돋는다. 그래서 자귀나무 움이 트면 늦서리 걱정 없다는 말이 있고, 자귀나무 첫 꽃이 피면 팥을 심는다고 한다. 자귀나무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6~7월에 꽃이 피기 때문이다. 잠을 자다가 나왔다고 잠자는 귀신이라 하여 자귀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흐린 날이나 밤이 되면 잎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잔다. 그래서 합환목(合歡木)이요 합환수(合歡樹)라 했다. 자귀나무는 양쪽 잎 숫자가 같아서 겹쳐지더라도 남는 잎이 없으니 홀아비 잎이나 과부 잎이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자귀나무를 집 마당에 심으면 부부 애정이 좋아진다고 했다. 꽃도 저녁 무렵에 늦게 피어 공작처럼 생긴 수술이 어여쁘다. 늦게 잎이 나도 꽃이 피는 데는 순식간이다. 열매가 맺히면 콩깍지가 달그닥달그닥 하는데 새를 부르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은 말하기 좋아 여자들 수다 소리 같다고 여설수(女舌樹)라나. 자귀나무는 모여 살지는 않기에 그건 사람들이 쑥덕이는 표현일 것 같다. 자귀나무는 아름다우면서도 소박하여 사는 곳도 한적하다.  

 

 

 

자귀나무 / 서울창포원 (서울 도봉구. 2019.5.20)

 

 

자귀나무 / 한강 잠실지구 (2019.6.12)

 

 

자귀나무 / 창경궁 (서울 종로. 2019.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