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추와 옥잠화
연보라 깔때기 꽃과 옥비녀 꽃
7월 중순 대모산 숲길을 걸었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쳤다. 비비추와 옥잠화에 빗방울이 맺혀 보석처럼 반짝인다. 비비추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주름이 잔물결처럼 반짝이고 주걱처럼 길쭉하다. 긴 잎자루에 잎이 세로줄이라 더 길어 보인다. 잎사귀 사이로 난 새끼손가락 정도 굵기 꽃대에 깔때기 모양을 한 연보라색 꽃송이가 차례차례 달렸다. 암술과 수술은 꽃잎 밖으로 길게 삐죽 나왔다.
비비추는 비비 틀면서 나는 풀이다. 잎이 꼬여서 뒤틀고 있다는 뜻으로 '비비'로 이름을 지었다. '취'는 먹는 나물이란 뜻으로 '취'가 '추'가 되었다. 옛 어른들은 비비추를 비비취라 그런다. 자루가 길어 장병옥잠(長柄玉簪), 색이 보랏빛이라 자옥잠(紫玉簪)이라 부른다. 어린잎은 우려내어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맛이 없고 씹는 질감만 있다. 옛 어른 들은 잎을 찧어 종기나 뱀에 물렸을 때도 발랐다. 꽃에 꿀은 후추맛이 난다. 비비추를 보면 주변 땅이 성그렇다. 주변에서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텃새를 부린다.
옥잠화(玉簪花)는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 모습이 옥비녀를 닮아서 옥비녀꽃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옥빛을 보려면 옥잠화를 보면 된다. 꽃이 필 때면 꽃머리쪽이 터지면서 노란 꽃술이 나오고 향기가 좋다. 저녁에 피고 아침에 시드는데, 꽃이 피고 열매는 맺지 않는 다년생풀이다. 꽃이 피었을 때보다 피지 않았을 때가 더 아름답다. 소나기가 내린 후 순백의 옥잠화는 더 맑고 아름답다.
전설에 선녀가 피리를 잘 부는 사람에게 주고 간 옥비녀가 떨어져 생긴 꽃이 옥잠화라 하였다. 속세의 꽃이 아니었다. 양화소록에는 '어린 스님(沙瀰)'으로 묘사할 정도로 절에서 많이 기른다. 정조대왕은 '옥잠화'란 시에서 옥잠화를 미인에게 주려고 멀리 서방을 바라본다고 하였다. 그 미인이 누구였을까? 옥비녀를 주겠다는 말이었을까? 괜한 풍파를 막기 위해 끝내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잠화 잎은 심장 모양으로 된 긴 타원형으로 여인의 치마처럼 넓다. 비비추보다 잎이 더 크고 둥글다.
비비추나 옥잠화는 여러해살이풀로 모습이 비슷한 형제지간이다. 대개 비비추는 옥잠화보다 잎이나 꽃의 크기가 작다. 비비추는 잎이 긴 달걀꼴 또는 심장꼴이며 7~8월에 연보라색이나 보라색 꽃이 핀다. 반면에 옥잠화는 잎이 심장형 모양의 큰 타원꼴이며 8~9월에 흰색이나 자주색 꽃이 핀다. 꽃색과 잎의 구분이 열쇠이다. 소나기 한 줄기 내리고 나면 더 시원하게 보이는 꽃들이다. 잎이 넓어 시원하고 꽃도 커서 시원하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모습이다. 마음을 가꿀 넓은 밭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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