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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우리도 산처럼/서울 산

인왕산 / 독립문에서 창의문까지

향곡[鄕谷] 2023. 11. 21. 20:38

 

인왕산 2

 

인왕산(仁王山. 339.9m) 

독립문에서 창의문까지

 

서울 서대문구. 종로구

독립문 - 이진아기념도서관 - 안산자락길 - 무악하늘다리 - 해골바위 - 선바위 - 인왕산 - 윤동주문학관 - 창의문

이동거리 5.0㎞. 이동시간 2:31. 휴식시간 1:16. 계 3:47 (2023.11.20. 맑음. 1.8~12.8℃)

 

 

 

 

 

인왕산은  궁궐 경복궁에서 서쪽에 있는 산이다. 내사산(內四山) 중 우백호에 해당한다. 인왕(仁王)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조선을 수호하라는 의미로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인적이 드물었던 외진 곳이었다.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것이 1921년이니 조선시대에는 인왕산에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을 법하다. 

 

안산자락길에서 무악하늘다리를 건너서 가면 해골바위가 있고 그 아래 선(禪) 바위가 있다. 스님이 장삼을 입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라 한다. 한양도성 축성 시기에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선바위를 두고 의견이 달랐다. 무학은 도성 안에, 정도전은 성 밖에 두자고 하였다.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면 불교가 성하고, 도성 밖에 두면 유교가 흥할 것이라고 정도전이 태조를 설득하여 도성 밖에 두었다. 스님이 장삼을 입은 바위 모습을 불교의 상징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선바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한양도성 안으로 들어섰다. 서울시내 중심부가 눈 아래로 보인다. 정상을 넘어서면 왼쪽으로는 기차바위 너머 북한산이 보이고, 인왕산 정상 아래로 넓은 치마바위가 있다. 중종반정이 성공하여 연산군은 폐위되고 중종이 왕이 되었다. 왕비는 반정에 반대한 중종의 처남 신수근의 딸이란 이유로 폐비되었다. 왕비는 원래 살던 인왕산 기슭으로 쫓겨나 날마다 이곳에 올라 치마를 널었다는 바위다. 조선 영조 때(1751년) 겸재 정선은 구름이 넘실거리는 이곳 바위 풍경을 보고 인왕제색도(仁王齎色圖)를 그렸다. 거대한 바위를 묵직하게 그린 산수도이다.

 

정상에서 땀을 식히고 성곽을 따라가면 창의문이 있다. 그곳에서 북쪽에 펼쳐진 북한산 원경은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꿈꾼 무릉도원 풍경을 안견이 그린(1447년) 몽유도원도(武陵桃源圖) 의 대상이 되었다. 아기자기한 풍경이 눈앞에 잔잔하다. 안평대군의 저택인 비해당이 수성동에 있었고, 별서인 무계정사가 부암동이니, 이 능선은 그 중간 정도 된다. 안평대군이 이곳 산을 자주 올랐던 모양이다. 하산길엔 산사나무와 계요등 열매가 푸짐하게 달렸다. 창의문은 인조반정 반정군이 들었던 문이다. 오늘 걸은 짧은 산길은 조선의 역사와 숨결로 가득하다.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며 걸어봄직한 의미 있는 길이다.

 

 

※ 교통편 (갈 때) 3호선 전철 독립문역 4번출구   (올 때) 창의문 건너에서 경복궁역 가는 버스 이용

 

 

 

무악하늘다리에서 보는 인왕산

 

 

해골바위

 

 

뒤에서 보는 선바위

 

 

앞에서 보는 선바위

 

 

인왕산 오르며 보는 산 아래 조망

 

 

인왕산. 정상 부근 오른쪽 바위가 치마바위이다

 

 

바로 앞이 기차바위. 그 건너 북한산이 보인다

 

 

몽유도원도 대상으로 삼은 북한산 원경. 산 밑에 주택지가 그림에 나오는 복사밭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소나무 연리지

 

 

산사나무 열매

 

 

계요등 열매

 

 

창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