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알려주는 계절 변화 신호
우리 조상들은 가까이 있는 식물의 변화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알았다. 겨울이 지나면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꽃이 매화이다. 그래서 매화를 꽃의 선두주자라 하고 춘풍제일지(春風第一枝)라 한다. 매화가 필 즈음에 울밖에서는 산수유 꽃이 피고, 산자락엔 생강나무 꽃이 핀다. 살구꽃은 집 부근에서 봄을 알리는 꽃이다. 음력 2월이 되면 연분홍색 살구꽃이 핀다. 그래서 이월에 대한 별명을 행월(杏月)이라 했다. 청명에 내리는 봄비가 행화우(杏花雨)라면 배꽃 필 때 내리는 비는 이화우(梨花雨)이다. 음력 춘삼월은 복사꽃이 피어 복사꽃도 봄을 대표한다. 벚꽃이 지면 찻잎을 따기 시작한다. 곡우(穀雨. 4.19경) 이전에 따는 차를 우전차(雨前茶)라 하여 고급차로 여겼다. 산에는 진달래, 산철쭉, 철쭉 순서로 핀다. 진달래는 3월 하순부터 2주 정도 피고, 산철쭉은 진달래가 지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피고, 마지막으로 철쭉이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핀다.
해거름에 분꽃이 피면 저녁 준비를 하고, 달맞이꽃이 피고 자귀나무가 잎사귀를 닫으면 곧 해가 질 것을 알고, 박꽃이 꽃잎을 닫으면 새벽이 온 줄 알았다. 식물의 변화에서 농사를 가늠한 일이 많았다. 살구꽃은 농민에게는 봄에 파종시기를 알리는 꽃이다. '살구꽃이 피면 백곡(百穀)을 심는다'는 속담이 있다. 대추나무 꽃은 늦게 핀다. 대추나무 꽃이 맺히면 도리깨질을 할 때이고, 대추꽃이 피면 모내기를 서둘러야 했다. 감나무 잎이 쌀알만큼 자라면 콩을 심고, 참나리 꽃이 피면 감자를 심고, 자귀나무 첫꽃이 피면 팥을 심었다. 자귀나무 꽃이 피거나 도라지 꽃이 피면 장마에 대비했다. 마타리 꽃은 여름 끝자락에 피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타리 꽃이 피면 가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여름내 피던 배롱 꽃이 질 때면 여름이 가고 가을 추수를 시작하는 때라 하였다.
'오동나무 이파리 하나 떨어지니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노라'는 말이 있다. 오동은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낙엽이 일찍 떨어지고, 잎이 커서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백로(白露. 9.7경)가 되면 본격적인 가을이다. 흰 이슬에 풀이 시들고 밤과 대추는 붉게 익고, 나락은 익어 들판이 노랗게 된다. 벼는 대추를 따고서 거두었다. 낮이 밤보다 짧아지면 코스모스나 국화가 핀다. 중양절(重陽節. 음력 9.9)에 국화를 따서 술을 담가 이듬해 중양절에 마셨다. 국화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 핀다. 꽃들은 어김없이 피고, 잎들은 철을 알아 진다. 식물의 일정한 움직임은 우주의 변화와 통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오랜 경험으로 그것을 기억하였다가 생활에 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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