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52
내설악에 있는 절
백담사, 영시암, 봉정암, 오세암
설악산 최고봉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마등령과 미시령, 남쪽으로는 한계령을 잇는 백두대간 능선이 있다. 그 능선을 기준으로 동쪽을 외설악, 서쪽을 내설악이라 부른다. 이번 산행은 백담사에서 시작하여 영시암,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지나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에 갔다가 소청대피소에서 하루를 쉰다. 이튿날에는 봉정암에서 오세암, 만경대, 영시암, 백담사로 돌아오는 길이다. 내설악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며 그 사이에 있는 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 백담사 (百潭寺)
용대리주차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백담계곡 7㎞를 가면 도착하는 곳이 백담사이다. 버스에서 보는 계곡 풍경은 싱그럽다. 길은 좁지만 버스가 빈 공간에서 기다리며 교행 하여 운행하는 것이 척척 맞아 거의 빈 시간이 없이 움직인다. 내설악을 대표하는 절인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647년) 세울 때는 장수대 부근에 한계사란 절이었다. 일곱 차례나 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절을 옮기고 이름도 바꾸었다. 거듭되는 화재로 이름을 고치려 하던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웅덩이가 몇 개인지 세어보라 하였다. 다음 날 가서 세었더니 100개였다. 그래서 못 담(潭) 자를 넣어 백담사란 이름을 지었다. 실제 못이 100개 라기보다는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였던 곳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절에서 몇 번 자기도 하고, 지금은 없어진 백담사 앞 민가에서 묵기도 하였다. 민가에서 묵을 때 주인이 아침에 땄다고 된장에 넣으라며 송이버섯을 건네주기도 했다. 한밤중에 백담산장(지금은 공원관리소 건물)을 찾아가면 작고하신 머리가 허연 산장지기 윤두선 님이 기타를 켜며 설악가(雪嶽歌)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백담사에서 오르내리며 만나는 영시암, 봉정암, 오세암은 모두 백담사의 부속 암자이다.
○ 영시암(永矢庵)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순한 길이다. 넓은 길이 끝나는 곳에 큰 물줄기가 나타나는 곳에서 시작하여 물길을 옆으로 두고 걷는다. 모퉁이 구룡소를 돌아 귀때기골 합수곡을 지나 쉬엄쉬엄 1시간 반 걸으면 영시암이다. 1970년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설악산에 다닐 때만 해도 절이 없어 영시암터로 불렀다. 조선 숙종조에 기사환국이 이 절과 연관이 있다. 숙종이 장희빈으로부터 원자를 얻어 아기가 1개월이 되었을 때 세자로 책봉하겠노라 하였다. 이에 송시열과 당시 영의정인 김수항이 반대를 하자 숙종은 이들을 사사(賜死)하고 김수항의 맏아들까지 죽였다. 김수항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붙잡혀 갔던 김상헌의 손자이다. 관직에 있던 김수항 아들들은 대문호이고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정치를 그만두고 떠났으니, 셋째인 김창흡이 세운 절이 영시암이다. 절 이름에는 영원히 세상과 인연을 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게 머문 6년 뒤(1714년) 함께 지내던 거사가 호랑이에 물려 죽자 김창흡은 춘천으로 나가고 절은 폐사되었다.
폐사 얼마 뒤 절을 중건하였으나 6.25 때 불타서 빈터로 있다가 김창흡의 후손인 서예가 김충현 등의 후의를 받아 1994년에 다시 세웠다. 그 당시 절 앞을 지나가면 등산객에게 구운 감자를 꼭 하나씩 주었다. 그 많은 양을 어떻게 다 조달했는지 정성이 대단하였다.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쉼터로 좋다. 물맛이 좋아 거기서 한 모금씩 들이키고 산에 오른다. 봉정암 가는 길은 영시암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도 길이 편하여 반 시간이면 넉넉하고, 거기서부터 본격 산길이라 4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 봉정암(鳳頂庵)
봉정암은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이 창건하여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암자다. 전국에 5대 적멸보궁(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중대사,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 중 한 곳으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가장 가까운 봉우리가 소청봉이다. 탑신에 사리를 봉안하여 그곳에 가도 부처님 형상은 만날 수가 없다. 설악산 8부 능선쯤 되는 1244m에 봉정암이 있다. 백담사에서 출발하면 10.6㎞라 점심까지 먹으면 대여섯 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래도 평생에 한번 가볼 성지라며 할머니들도 오르고 전국의 불자들이 찾는다. 모두들 내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원력으로 오른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 소청봉에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와 사리탑을 비추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에 설악산 갈 때는 봉정암 앞에 봉정산장이 있었다. 산장이 다 찰 때는 법당을 잠자리로 내어주었다. 그때 우리가 단체로 간다고 하니 비가 오는데도 주지스님이 삿갓을 쓰고 깔딱 고개까지 나오셨다. 지금은 봉정산장이 없어지고 절에서 지은 숙소 건물이 있다. 절에서는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잠자리 예약을 받는다. 좁아서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끼니는 밥을 만 미역국에 오이나 단무지를 넣는다. 오르내릴 때 먹으라고 주먹밥도 하나씩 주었다. 봉정암 갈 때는 미역줄기 하나씩은 꼭 가지고 갔다. 주먹밥은 코로나 이후에 전염병 예방을 위해 없어져서 그것도 아쉽다. 용아장성 끄트머리에 사리탑이 있고, 그 사리탑 옆으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있다. 폭우에는 그 길을 잠정 폐쇄하기도 한다. 사리탑 위쪽에서 보면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보이고, 중청봉 정상도 보인다. 대웅전은 새로 지어 그곳도 많이 변하였다.
○ 오세암 (五歲庵)
봉정암 사리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동계곡을 가로질러 3시간 정도 내려가면 오세암이다. 오세암은 내설악 만경대에 있다. 수렴동계곡으로 오르내리는 길보다 어렵다. 내려가는 초입에 용아장성도 보고 공룡능선도 볼 수 있다. 오세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643년) 관음암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천 년 뒤 (인조 21년. 1643년) 설정스님이 고아가 된 형님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월동 준비를 위해 양양 물치장터에 가게 되었다. 밥은 지어 놓고, 이틀 동안 다녀올 테니 법당에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으라고 하고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는 왔는데 폭설로 더 이상 가기 어려웠다. 이듬해 3월 갔더니 법당 안에서 그 소년이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가늘게 외고 있었다. 다섯 살 동자가 관세음보살 신력으로 살고 있었던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름을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고쳤다. 오세암은 김시습이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고, 조선 불교를 부흥하려던 보우가 수도하였고, 한용운이 머물렀던 절이다.
우리가 봉정암에서 내려가며 들른 절이기도 하지만, 공룡능선을 타며 마등령에서 비선대 내려가는 길이 너무 길고 지루하여 이쪽으로 방향을 잡기도 했던 길이다. 봉정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은 가야동계곡까지 1시간 이상 내려가고, 거기서 950 내외의 고개를 다섯 개를 넘어야 하니 쉽지는 않다. 봉정암에서 오세암 오가는 길이 멀거나 날씨가 나쁘면 이곳에서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 절 인심이 좋아 그냥 지나는 객도 공양을 하고 가라 한다. 이제는 고색창연한 모습을 볼 수는 없어 그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오세암에서 1시간 걸으면 영시암이고, 영시암에서 다시 백담사로 가면 원점회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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