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람 이름
동풍은 샛바람, 서풍은 하늬바람
봄바람은 '화풍이 건듯 불어 녹수를 건너오니'처럼 살랑살랑 분다.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에 나오는 글로 꽃과 술이 어우러지는 명시이다. 화풍(和風)은 부드럽게 솔솔 부는 화창한 바람을 이르는 것으로, 봄에 부는 부드러운 바람이다. 한자로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바람 이름이다. '갈바람에 우수수 칠십 년을 보냈다'는 추사 김정희의 '길갓집'이란 시가 있다. 갈바람은 가을에 부는 선들바람이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귀에 들어온다. 우리말로 나타낸 바람 이름은 시에 자주 등장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써서 그 자취가 남아 있다.
뱃사람들은 동쪽을 새쪽, 서쪽은 하늬쪽, 남쪽은 마쪽, 북쪽은 노쪽이라 한다. 그래서 새쪽에서 불어오는 동풍(東風)은 샛바람이다. 샛바람의 '샛'은 방위로는 동쪽이요, 시간으로는 맨 처음을 나타낸다. '날이 새다', '새벽', '새롭다'의 '새-'와 어원이 같다. 동풍 외에 춘풍(春風)도 샛바람이다. 봄이 계절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샛바람이 부는 초봄에는 살바람, 소소리바람, 꽃샘바람도 있다. 살을 파고드는 찬바람이라 살바람이요, 소름이 솟아 소소리바람이요, 꽃 피는 것을 시샘하여 꽃샘바람이다. 명주처럼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은 명주바람, 비가 안 오는데 몹시 부는 바람은 강바람이다.
하늬쪽에서 부는 서풍(西風)은 하늬바람이요 갈바람이다. 하늘 높은 곳에서 불어 하늬바람(天風)이요, 가을에 불어 갈바람이다. 갈바람은 솔솔 불어 더위를 식히기에 선들(산들) 바람이다. 초가을에 부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을 건들바람이라고도 부른다. 건들이란 이름은 생명이 길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늦가을에 부는 차가운 바람이 서릿바람이다. 찬 기운이 훅 드는 이름이다.
남풍(南風)은 마파람이다. 마주 오는 바람이라 마파람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다'고 많이 쓴다. 집은 대부분 남향이기에 마파람이며, 앞바람으로도 쓴다. 이마의 '마'도 앞을 뜻하는 말이다. 북풍(北風)은 겨울에 부는 바람이다. 우리말로는 '높바람' '된바람' '뒷바람'이다. 북쪽은 노쪽이고 높은 곳이며, 북쪽이 '되'라 북쪽 오랑캐는 '되놈'이다. 남(南)이 앞이요 북(北)은 뒤이다. 화장실도 뒤에 있어 뒷간이다. 용변을 보는 일도 '뒤를 본다'라고 한다. 맵고 독하게 부는 바람은 고추바람이요, 문풍지 사이로 밀고 들어오는 센 바람은 황소바람이다.
이처럼 동서남북을 뜻하는 '새, 하늬, 마, 노'에 바람을 붙이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다. 북동쪽은 노쪽과 새쪽을 합쳐 높새바람이나 된새바람, 북서풍은 노쪽과 하늬쪽을 합쳐 높하늬나 된하늬다. 바람은 방향을 비껴 불어오는 바람도 있으니 이런 바람이름도 필요하다. 더불어 바람에는 기운이란 것이 있다. 바람기는 바람이 불어올 듯한 기운. 바람살은 세찬 바람의 기운. 바람씨는 바람이 불어오는 모양. 바람꽃은 큰 바람이 일 때 먼산에서 구름같이 끼는 뽀얀 기운이다.
바람은 늘 움직인다. 그래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고, 나무가 크면 바람도 세게 치는 법이다. 나무가 바람에 대비하는 방법은 줄기를 굳게, 가지를 질기게, 잎을 납작하고 딱딱하게 만든다. 맞서 싸우지 말고 저항하지 말라. 그것이 나무가 바람에 대해 터득한 도(道)이다. 그 도는 나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농어촌에 바람이름이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며 생활에서 잘 썼기에 아름다운 바람에 대한 말이 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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