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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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궁궐 16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2)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2) 장락문(長樂門) 연경당 중앙에 들어가는 문이다. 같은 이름이 창덕궁 낙선재에도 붙어있다. 말 그대로 '무궁한 즐거움'이란 뜻이다. 신선의 궁궐을 장락궁이라 한다. 장락문 연경당(演慶堂) 장락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집이다. '경사가 이어지는 집'이란 뜻이다. 대갓집을 본 따 궁궐 안에 지은 99칸짜리 집으로,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여기서 쉬었다고 한다. 연경당 관람지(觀纜池)와 관람정(觀纜亭) 3개의 연못을 일제강점기에 이었다. 한때 반도지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관람지라 부른다. 부채꼴 모양의 정자가 관람정이다. 람(纜)은 닻줄의 뜻인데, 관람은 '배를 띄워 놓고 구경하다'는 의미이다. 관람지와 관람정 승재정(勝在亭) '뛰어난 경치(勝景)가 있는(在..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1)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1) 후원(後苑) 후원은 한자로, 뒤 후(後) 나라 동산 원(苑)이다. 궁궐의 뒷 정원이니 그리 풀어쓸 수 있다. 1903년부터 숨겨둔 정원이란 뜻인 비원(秘苑)을 썼으나 지금은 공식적인 이름이 후원이다. 부용정(芙蓉亭) 부용은 '연꽃'이란 의미인데, 부용지(芙蓉池) 연못 옆에 세운 정자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부용지 연못은 네모나고, 중간에 있는 조그만 섬은 원형인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사상에 의해 만들었다. 부용정 주합루(宙合樓) 부용지 앞 높은 곳에 서 있는 건물이 주합루이다. 주(宙)는 천자문 앞쪽에 나와서 눈에 익은 글씨인데,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간을 뜻한다. 따라서 주합루는 옛날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시간 적인 영역인 것이다. 주합루 ..

창덕궁 설경

창덕궁 설경 창덕궁(昌德宮) 2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2010.12.28) 창덕궁은 조선 왕실의 동궐로 경복궁이 불이 난 후 가장 오래 왕과 왕비가 머물렀던 공간이다. 그만큼 실록에 자주 등장하였다. 건물은 주변 지형에 거스르지 않게 자연스레 자리 잡았고, 자연을 깊숙이 끌어들인 후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었다. 경인년이 저물어 가는 섣달에,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에 아름다운 궁궐 모습을 구경하러 나섰다. 눈 내려 더 아름답다. ※ 교통편 :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관람시간 : 09:00~17:00 (겨울 기준. 입장은 마감 1시간 전). 매주 월요일은 쉼, 후원은 시간제. 해설사 안내를 받아 관람. 2시간 걸림 창덕궁 희정당(왕과 왕비의 업무 및 생활공간) 희정당 ..

창덕궁에서 창경궁 가는 길

창덕궁에서 창경궁 가는 길 (2010.11.8) 노란 은행잎 하나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가을이 들어왔다.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 뒤로 낙엽이 흩어진다. 행인은 떨어지는 잎을 휘저어 보기도 하고 허리를 숙여 떨어진 잎을 줍기도 한다. 가을이 가고 있다. ※ 창덕궁은 안국역3번 출구에서 250m 정도 가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이 나오며, 돈화문에서 왼쪽 담을 따라 단봉문 앞을 지나 10여분 걸어가면 창경궁이다.

창덕궁 후원 / 자연의 모습을 살린 아름다운 왕실 정원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 자연의 모습을 살린 아름다운 왕실 정원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안 (2010.5.13) 후원을 얼마 전까지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부른 이름을 그냥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쓰고 있는 이름이 아직 얼마나 많을꼬. 양지볕에 있다가 후원 울창한 수림 입구에만 들어서도 시원하다. 자연 속에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진 정원이 아름답다.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용지엔 왕실도서관 규장각이 있는 건물 주합루(宙合樓)가 있다. 규장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이요, 주합루란 우주와 통하는 집이며, 어수문(魚水門)은 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고 지은 이름이어서 부용지는 백성을 위..

창덕궁 / 500년을 창성한 궁궐

창덕궁(昌德宮) 500년을 창성한 궁궐 사적 제122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 (2010.5.13) 조선의 정궁은 경복궁이고, 창덕궁은 경복궁 동쪽에 있다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세운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500년 이상 궁궐의 역할을 지켜왔으니 세월만큼이나 큰 역할을 한 궁궐이다.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타고 고종 연간에 지었으니 그동안 정궁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100년 전 1910년 창덕궁에서 한일합방 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조선의 역사도 창덕궁의 건축물도 비뚤어졌다. 정전인 인정전에 오얏무늬를 넣어 조선왕조를 이왕조 가문으로 격하시키고, 실내장식도 서양식으로 바꾸고, 건축물을 옮기고 줄이는 등 왕조의 체면만이 아니라 궁궐의 모양새가..

창경궁 2 / 기쁨을 창성하는 궁

창경궁(昌慶宮) (2) 기쁨을 창성하는 궁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2010.4.12) 창경궁은 세종이 상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에서 시작하여, 성종 때는 생존한 대비를 모시기 위하는 등 왕실 생활공간의 역할이 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일제강점기 때는 창경원으로 유희 공간으로 쓰이고 종묘와 단절시키는 길을 내는 등 왕실의 상실감을 극도로 맛본 좌절의 장소였다. 그래서 내전 터나 궐내각사터 등이 아직도 휑하니 비어있다. 궁궐의 품위를 해치느니 차라리 비어있는 것이 낫다. 창경궁이 창덕궁과 합하여 동궐로 쓰이면서 방위도 동으로 보고 있어 정문 홍화문도 동쪽이다. '널리 덕화가 미치다'는 뜻인 홍화문을 지나면 바로 아름다운 다리 옥천교가 있고, 창경궁에서 일찍 피는 꽃나무들이 모여있다. 일제가 심..

창경궁 꽃 구경 / 실버들 그림자는 물에 젖고 ‥

창경궁 꽃구경 실버들 그림자는 물에 젖고 … 서울 종로구 와룡동 (2010.4.12) 봄 물이 춘당지(春塘池)에 가득 찼다. 실버들 연초록 그림자는 물에 젖고 봄꽃은 한 점 한 점 하늘에 수를 놓는다. * 창경궁 함인정(涵仁亭) 편액에 걸린 시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정말 몇십 년 만에 본 창경궁 꽃구경이었습니다.초등학교 시절에는 일 년에도 서너 번은 그 당시에는 창경원으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손을 잡고 소풍 가던 시절이 아련히 떠 오르는군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2010. 4.14. 원중희

궁궐 지붕 잡상 /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토우

궁궐 지붕 잡상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토우 궁궐 지붕을 보면 기와지붕 내림마루나 추녀마루에 한 줄로 서있는 군상을 볼 수가 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이 토우를 잡상(雜像)이라 부른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 모양을 자세히 볼 수가 없어도 모자를 쓴 사람 형상과 여러 동물 형상인 것은 알 수가 있다. 잡상을 처음 사용한 것은 중국 송나라 때라 하는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그 자료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일반 백성들 주택에는 쓰지 않았고, 궁궐 정문, 능이나 원의 정자각, 종묘, 성균관 지붕에 잡상을 사용하였다. 잡상을 만든 것은 궁궐에서는 나무가 많아 화재에 취약하므로 화재를 예방하고, 사람을 해치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왕실을 사악함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보통 3개에서 11개까지 홀수로 두었다...

경희궁 / 조선 후기 이궁

경희궁(慶熙宮) 조선후기 이궁(離宮)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2007.6.8)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이궁(離宮)이었다. 1623년 광해군 때 지은 궁으로 서궐이라 불렀다.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영조 때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조 이후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임금이 머물렀는데 영조의 치세는 이곳에서 절반 이상을 보냈다. 당초 100여 동 건물들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 후 궁궐터를 헐고 학교를 만들면서 경희궁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에서 복원하여 2002년 개방하였다고 하나 경희궁 뒤뜰은 아직 동네축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적 정문엔 문화유적에 대한 예의도 없이 음료수회사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는 등 문화유적 복원에 더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