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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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아버지 7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내 혈액 속에 녹아 / 김종길 시 '성탄제'

명시에서 찾는 장면 1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김종길 시 '성탄제'에서       성탄제(聖誕祭)                                 김종길어두운 방안엔빠알간 숯불이 피고,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이윽고 눈 속을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는지도 모른다.어느새 나도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

소설가 박완서와 아버지

소설가 박완서와 아버지 맛깔스러운 소설을 쓰는 박완서 선생님이 올해 초 돌아가셨다. 선생님의 이력과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어보면 아버지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동 시대를 살아간 분들이 다 그러한 경험을 하신 분이 꽤 있었겠지만, 나의 입장에 견주어 그렇다는 것이다. 6.25 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 박완서선생님은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셨고, 아버지도 그 해에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입학하여 전쟁으로 두 분 모두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전쟁은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피난을 가거나 피난을 가지 않거나 가혹한 시기였다. 박선생님 같이 서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겐 암흑과 이별, 몇 달 사이로 피아가 바뀌는 치하에서 지내기란 참으로 두렵고 ..

연하장 / 아버지가 보낸 연하장

연하장 아버지가 보낸 연하장 며칠 전 오래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쓰신 연하장 한 장이 나왔다. 새해가 다가와서 아버지께 연하장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서 아들한테 답서로 보낸 연하장이 오래된 편지뭉치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아버지 살아계실 때 설은 요즈음 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설날 아침에 말 그대로 해(歲)를 맞는 절(拜)을 드리는데, 어른들께 새해 첫 인사를 드리는 분위기가 달랐다. 성주께 제를 올리고 나서 세배를 하기 위해 서 있으면, 서 있는 자세에서 두 손은 어떻게 잡고 절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며, 절하고 나서는 어떻게 앉으며, 어른한테 드리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어른한테는 '과세 편히 하셨습니까' 하든지 그것이 어려우면 '새해 건강하십시..

아버지

※ 어느 일간 신문에 기고한 글을 감명 깊게 읽은 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아버지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아버지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

아버지의 기다림

아버지의 기다림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초여름 마루에서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자전거에 두루말이를 매달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우리 더러 식사를 마저 하라며 뒷마루 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셨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니 모두 옷을 입고 마루로 나와 상을 준비하고 돗자리를 펴게하셨다. 모두 북쪽을 향해 서라며 그제야 상에 올린 두루말이를 폈다. 삼베였다. 오늘 너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어른이 계신 서울을 향해 절을 하라는 말씀을 채 마치지 못하고 당신이 먼저 목이 매었다. 어머니도 우시며 곡을 하시고, 우리도 눈물을 찔끔거리고 따라서 절을 하였다. 식구들이 저녁을 마치도록 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그 기다림이 아버지에게는 늘 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든 어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