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대군(月山大君) 묘
조선시대 대표 대군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2009.7.25)
원당에서 낙타고개를 넘어 고개를 다 내려가기 전에 오른쪽 야산에 월산대군 묘가 있다. 차가 다니는 길가라서 시끄러워 자연을 벗하며 살았던 월산대군에겐 맞지 않는 자리가 되었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친형으로 세자의 자질은 있었지만 성종의 장인이었던 한명회의 계책으로 왕이 되지 못하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 성종은 형을 위해 덕수궁을 지어주고, 월산대군은 자연을 벗 삼아 은둔하며 풍류를 벗하고 지냈다.
대군의 묘답게 터는 넓고 봉분은 왕릉처럼 커서 호방하다. 비각에 들어간 신도비는 오백 년 세월의 연륜을 담아 퇴색되었지만 육중하다. 비문은 임사홍이 지었으며, 비명은 전서체로 썼는데 부드럽고 월(月)과 산(山)은 상형문자로 표시하여 독특하다. 월산대군 묘 뒤에는 부인 박 씨가 묻혀있는데, 월산대군이 죽고 난 뒤 왕이 된 조카 연산군이 백모인 박 씨 부인을 겁탈하여 자결케 한 기막힌 사연이 있다. 그 뒤 박 씨 동생인 박원종이 연산군을 쫓아내는 중종반정의 주동인물이 되어 누님의 한을 풀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대군 옆에 있지 않고 뒤에다가 잠들게 한 모양이다.
월산대군은 망원정(望遠亭)에서 시문을 읊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지냈는데, 망원정에서 유래하여 망원동 동네 이름을 지었다. 거리가 다소 있지만 한강 남쪽 압구정(鴨鷗亭)은 월산대군의 앞 길을 막은 한명회가 세운 정자여서 한강을 사이에 두고 대비되는 인물을 견주어 보면 흥미로운 일이다.
※ 가는 길
공양왕릉-마을길을 나와- 좌회전하여 100m 가다가 오른쪽 길을 따라 의정부 가는 길로 합류- 낙타고개- 부대 표지판-월산대군 묘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월산대군 묘 / 월산대군(1454~1488)
월산대군 신도비 비명 / 월산대군 비명(月山大君碑銘)이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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