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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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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배가 못 뜨는 변산 바다에서

향곡[鄕谷] 2021. 5. 30. 20:57

바람 불어 배가 못 뜨는 변산 바다에서

 

격포항-닭이봉-채석강-적벽강

전북 부안 변산면 격포리 (2021.5.26. 흐린 후 빗방울)

 

 

 

부안에 있는 섬 위도로 가기 위해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부안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변산 격포항까지 갔다. 바람이 불어서 배는 뜨지 못하였다. 풍속이 약한 바람인데도 말이다. 십수 년 전에 위도에서 돌아오는 서해페리호가 풍랑에 25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뒤로 엄격해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두리번두리번 찾은 격포항 밥집에서 점심을 시켜서 먹었다. 가정식 백반을 시켰더니 반찬이 열댓 가지가 넘는데 실속도 있다. 다음 배를 더 기다리기로 하고 배낭을 식당에 맡기고 변산 바닷가를 걸었다. 자연이 아름다운 부안에는 갈 곳이 여럿 있다. 직소폭포를 볼 수 있는 내변산이 있고, 내소사 일주문과 전나무숲, 줄포만 곰소 바다, 낙조가 아름다운 격포해수욕장이 있는 채석강과 적벽강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이 가까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채석강을 가기 위해 닭이봉에 우선 올랐다. 격포항과 채석강 사이를 끼고 있는 봉우리가 닭이봉이다. 격포 마을이 지네 형국이라 재앙이 끊이지 않자 상극인 닭을 이름으로 삼은 뜻이 있다. 격포항 끄트머리에서 닭이봉 꼭대기까지는 500m 정도 되는 가까운 곳이다. 그 짧은 산길에 풀과 나무가 다양하다. 난대성 나무인 꽝꽝나무, 동백나무, 예덕나무가 있고, 처음 보는 좀네잎갈퀴, 광릉골무꽃도 볼 수 있었다. 그밖에 솔잎미나리가 있고, 산골무꽃이 있다. 장딸기가 띄엄띄엄 있어 입맛을 돋운다.

 

산을 내려서니 채석강이다. 채석강은 닭이봉 일대에 1.5㎞ 층암절벽과 그 일대 바다를 총칭하는 지명이다. 변산팔경 중 하나인 채석범주(彩石帆舟)가 이곳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놀던 중국 채석강과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바닷물 침식을 받은 화산성 퇴적암층을 말하며, 이곳은 강은 아니다. 밀물이 들어와 잠시 살피고 이내 나왔다. 잠시 한눈을 파면 갇히기 십상이나 직원이 관리하고 있었다. 채석강을 지나 격포해수욕장 뒤로는 난대성 나무인 태산목과 광나무가 있었고, 유채가 긴 원주형 열매를 달고 있었다. 노란 꽃이 필 때나 그것이 유채인 줄 알지만 이렇게 긴 열매를 매단 것이 유채인 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대파와 마늘과 양파가 밭에서 싱싱하다. 따로 있으면 어느 것이 마늘이고 양파인지 모를 텐데, 그것들이 모여 공부를 시켜준다. 

 

다시 적벽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박나무군락이 자생하며 해안으로부터 수성당(水城堂)이란 당집이 있는 용두산을 감도는 층암절벽이 있는 곳이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놀던 적벽강과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라는데,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반으로 그 위에 여러 종류 암석이 섞이고 단층과 습곡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역시 강은 아니다. 후박나무군락은 철망으로 막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 비가 후드득 뿌려 폐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낮달맞이꽃이 마당에 한가득이다. 폐가를 꽃이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앞 물가엔 미나리가 수북 자라고, 그 옆엔 호랑가시나무가 싱싱하다. 호랑이 등을 긁는 나무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대나무 숲 사이로 적벽강 층암으로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증폭하여 쏴아 쏴아 시원하다. 

 

그다음 뱃시간이 되었는데도 배는 뜨지 못한다고 한다. 예약했던 민박집에서도 섬에 배가 안 다닌다고 방송으로 들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횟집에 들아가 회 한 접시를 시켰다. 눈앞에 위도가 보이는데 가질 못한다. 허균도 함열(익산에 있던 옛 지역)에 유배 와서 홍길동전을 지으면서 이상향으로 삼았던 율도국이 위도라 했는데, 그도 가보지 못하였을까? 고슴도치 위(蝟)라서 이렇게 까칠하게 하는 것일까? 이곳 부안 삼절의 하나인 조선 중기 여류시인 기생 이매창이 지은 시에 '봄날의 근심(春愁)'이 있다. '봄빛 나는 긴 둑엔 풀이 우거졌으니 / 옛 임 돌아오다 헤매진 않으신가 '라고. 우리 처지가 그리 되었다고? 괜찮다 매창. 자연의 일인 걸 어떻게 하랴. 격포항에서 서울로 철수하기로 하고 버스를 탔다. 우리의 사연을 들은 버스기사가 위도 뱃사고 때 얘기를 하였다. 그 배를 탔던 자기 친구가 만삭인 아내가 답답하여 뱃전에 나왔다가 바다에 빠진 후 같이 살아서 나왔던 얘기를 해준다. 우리를 위로하는 말로 이 날씨에 배가 안 뜨다니 그런다. 자연이 하는 일을 어찌하랴.

 

 

 

광릉골무꽃

 

이하 채석강

 

이상 채석강
채석강과 격포해수욕장은 물이 차고, 수평선 위로 위도가 보인다

 

적벽강 암석층

 

적벽강 가는 길

 

열매가 달린 유채

 

낮달맞이꽃

 

장딸기

 

호랑가시나무

 

미나리

 

예덕나무

 

밀물이 들어온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 건너편 산은 닭이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