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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11. 구리 동구릉 2. 목릉(睦陵.선조),휘릉(徽陵.인조계비),숭릉(崇陵.현종)

향곡[鄕谷] 2021. 11. 18. 14:07

 

왕릉과 숲 11

 

구리 동구릉 2. 목릉(穆陵. 선조), 휘릉(徽陵. 인조계비), 숭릉(崇陵. 현종)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목릉(睦陵) : 조선 14대 선조(宣祖. 중종의 손자. 덕흥대원군의 아들. 1552.11-1608.2(56세). 재위 40년 7개월(1567.7-1608.2)과 첫째 왕비 의인(懿仁) 왕후 박(朴)씨(1555-1600.45세), 두 번째 왕후 인목(仁穆) 왕후 김(金)씨(1584-1632. 48세)의 능 (동원이강릉)

휘릉(徽陵) : 조선 16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莊烈) 왕후 조(趙)씨 (1624-1688.64세)의 능 (단릉)

숭릉(崇陵) : 조선 18대 현종(顯宗. 효종의 첫째 아들. 1641.2-1674.8(33세). 재위 15년 3개월(1659.5-1674.8))과 명성(明聖) 왕후 김(金)씨(1642-1683.41세)의 능 (쌍릉)

 

 

 

 

조선 13대 왕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는 12살에 요절하였고, 왕후와 6명의 후궁은 누구도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16살에 왕위를 이었으니 선조이다. 후궁에서 태어난 서얼 출신이 왕위를 이어받아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사림(士林)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다. 선조는 당쟁에 줄타기를 하면서도, 수많은 전란 징후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있어 났다. 사대부는 군역과 세금을 면제받고 희생이 없으니 군사를 모집해도 백성이 목숨을 걸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 불교를 멸시하던 선조는 전쟁이 나자 불가에 손을 내밀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승군을 조직하여 싸웠다. 그러나 선조는 도망을 가고 백성에게는 거짓으로 말하니, 백성들은 노비문서가 있는 궁궐을 불태웠다. 선조가 요동으로 도망가려 하자 유성룡이 앞장서 막았다.

 

선조는 도망갔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분전하고, 의병이 일어나고, 명군이 참전하여 전쟁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의병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일부 사림이 솔선하였고, 유성룡이 주도한 개혁입법 때문이었다. 양반과 천민으로 속오군(束伍軍)을 만들고, 천인들이 종군하는 대가로 양인(良人)으로 속량 해주고 벼슬까지 주는 면천법, 유급 상비군인 훈련도감, 농지의 양에 따라 세금을 내고 잡다한 공납을 폐하고 쌀로 통일하는 작미법(作米法), 압록강 중강진에 국제시장을 열어 면포를 주고 곡물을 교환하는 민생정책으로 백성의 마음을 움직여 나라가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왜란 다음 해 4월 왜군이 남으로 밀려가고도 6개월이 지난 1년 반 만에 선조는 궁궐로 돌아왔다. 선조는 자신이 조롱을 받는 것을 알아 전쟁이 끝나가자 전쟁영웅 제거하기에 나서 육지전의 영웅 김덕령은 왕조 타도 혐의로 죽이고, 이순신은 적과 내통이 의심된다며 고문을 하고, 백성에게 인기가 많은 유성룡은 파직시켰다. 무능한 임금이 염치도 없었다. 유성룡이 물러나는 날 이순신은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양반들은 변심하여 개혁입법은 없어지고, 논공행상은 선조를 따라갔던 호위 문신 위주로 하고, 이순신의 전과는 인정하지 않고 전사를 애석해하지도 않았다. 조선은 전란으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고, 후사를 둘러싸고 조정은 다시 정쟁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죽자 관리들은 한 일과 어울리지 않게 베풀 선(宣) 자 묘호를 짓고, 화목할 목(穆) 자 능호를 지었다.

 

선조의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는 선조 2년에 왕비가 되었으나 후사가 없이 죽었다. 인목대비는 선조 35년에 왕비가 되어 영창대군을 낳았으나, 광해군과 대립하여 덕수궁에 갇혀 지내며 험란한 정치역정을 보낸다. 그러다가 1623년 인조반정을 대왕대비 자격으로 허락하여 광해군을 폐하였다.

 

휘릉에 묻힌 장렬왕후는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예송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인조의 원비인 인열왕후가 죽고 14세인 장렬왕후가 계비가 되었다. 인조가 죽었을 때는 왕비가 25살이어서 세자(효종) 보다 다섯 살이나 적지만 자의대비란 존호를 받으며 대비가 되었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효종보다 오래 살았다. 효종의 국상이 나자 복장 문제로 서인과 남인이 다투었다. 서인은 효종이 차자(次子)이므로 1년상 복장을, 남인은 왕위에 오르면 장자(長子)의 지위라며 3년상 복장을 주장하여 서인이 이겼다. 이번에는 효종비가 죽어 다시 2차 예송논쟁이 일어나자, 현종이 '임금에게 야박하게 굴면 누구에게 두텁게 구느냐'며 남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서인이 몰락하고 남인이 등용되었다. 그들에겐 주자가 왕보다 더 높았다. 송시열 등 서인은 노론이 되었다. 노론은 조선 말기까지 정치세력을 놓지 않았다. 자의대비가 된 장렬왕후는 예송논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역할이 없이 정치권력이 시키는 대로 그냥 지나가는 왕후였을 뿐이다.

 

숭릉에 묻힌 현종은 왕 중에서 유일하게 다른 나라(중국 선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봉림대군(효종)이 중국에 있을 때다. 현종은 왕이 되자마자 예송논쟁에 시달렸다. 현종은 불쾌했지만 따랐다. 형식은 왕실의 장례문제인 것 같지만 이념논쟁이고, 정권의 주도권 다툼이고,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을 묻는 문제라서 각 당파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사대부의 싸움에 왕권만 추락하였다. 사대부의 조세저항도 대단한 시기였다. 그러나 김육 등이 준비하여 백성의 이익을 추구한 대동법(大同法)을 호남 전역에 확대하였다. 현종 때에는 자연재해가 한꺼번에 닥친 경신대기근이 있었다. 가뭄, 홍수, 냉해, 태풍, 병충해로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이 허다하였다. 현종은 군비를 축소하고 진휼청을 설치하여 백성 살리기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었다.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 씨는 인자한 면이 없고 성격이 팔팔하여 후궁 하나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아들 숙종이 총애한 장희빈도 내쫓고, 아들(숙종)이 등극하자 정무에 관여하여 왕을 곤란하게 하였다. 현종 때부터는 반정공신들이 명분으로 산림을 등용하게 하고, 실리로는 국혼을 놓치지 않게 하였다. 조선왕조의 운명은 그렇게 외척에 흔들렸다. 백성은 식량을 구하느라 지쳐 있는데 사대부들은 예론에 집착했다. 현종은 이러한 일에 시달리고 종기와 피부병 등으로 시달렸다. 현종 6~10년에는 년 평균 50회나 온천에 가서 국정에 차질이 있었다. 현종은 큰 업적이 없이 33살에 일찍 세상을 떴다. 현종이 묻힌 자리는 동구릉 중 가장 외진 곳에 있다. 신하와 왕비에 시달렸으니 조용히 지낼 자리로 잡은 모양이다. 정자각은 왕릉 중 유일하게 위에서 보면 八자인 팔작지붕이다. 왕릉은 정자각 위에 가지런하고 평온하다. 죽은 자의 귀에 누가 다시 얘기하랴.    

 

선조가 앓자 추운 날에 오가피주를 마시고, 다른 병으로 으름과 개나리 열매를 넣은 약을 만든 얘기도 나오고, 백성의 아픔과 멀리한 임금이라 피난 시 먹는 얘기만 전한다. 조선 중반에 기근이 들었을 때 백성들은 도토리로 배를 채우는 일이 늘었다. 또한 병에다가 버드나무 가지를 꽂고 분향하는 것으로 기우제를 대신했다. 어려운 삶을 산 백성들이었다. 조선시대에 곤장은 물푸레나무나 참나무로 썼는데, 현종대에 와서 처음으로 버드나무로 대신하라는 얘기를 하였다. 기근에 재난을 당하였던 임금이라 맞는 백성의 아픔도 알았던가. 그러나 관리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11월에 한시적으로 휘릉에서 원릉으로 가는 숲길을 개방하였다. 팥배나무, 오리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참나무와 어우러져 가을을 선물한다. 숭릉 가는 길에 참빗살나무와 백당나무 열매가 홀로 붉고, 연지에는 오리들이 마른 연 사이로 헤엄을 쳐 구름 그림자가 흩어진다. 같은 동구릉 안에서도 한 켠으로 벗어나니 한적한 공간이 더 있었다.

 

 

 

 

 

목릉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

 

 

 

목릉 (선조릉) (2009.7.11)

 

 

 

목릉(선조릉) 문무인석 (2009.7.11)

 

 

 

목릉(의인왕후의 능) 문무인석

 

 

 

 

휘릉 (인조계비 장렬왕후의 능)

 

 

 

왕의숲길

 

 

 

팥배나무 / 동구릉 (2019.5.8)

 

 

 

팥배나무 / 동구릉 (2021.11.16)

 

 

 

오리나무 / 동구릉 (2021.11.16)

 

 

 

 

개느삼 / 동구릉 (2019.5.8)

 

 

 

고로쇠나무 / 동구릉 (2019.5.8)

 

 

 

참빗살나무 / 동구릉 (2021.11.16)

 

 

 

숭릉 (현릉과 명성왕후능)

 

 

 

숭릉

 

 

 

왕의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