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과 숲 12
구리 동구릉 3. 혜릉(慧陵. 경종비), 원릉(元陵. 영조), 수릉(綏陵. 추존 문조), 경릉(景陵. 헌종)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혜릉(慧陵) : 조선 20대 경종비 원비 단의(端懿) 왕후 심(沈)씨 (1686-1618.32세)의 능 (단릉)
원릉(元陵) : 조선 21대 영조[英祖. 연잉군. 숙종 둘째 아들. 어머니 숙빈 최 씨. 1694.9-1776.3(82세). 재위 51년 7개월(1724.8-1776.3))와 두 번째 왕비 정순(貞純) 왕후 김(金)씨 (1745-1805.60세)의 능 (쌍릉)
수릉(綏陵) : 추존 문조(曉明세자→翼宗→文祖. 23대 순조의 첫째 아들. 1809-1830(21세)와 신정(神貞)왕후 조(趙)씨(1808-1890.82세)의 능 (합장릉)
경릉(景陵) : 조선 24대 헌종(憲宗. 추존 문조의 아들, 순조의 손자. 1827.7-1849.6(22세)과 원비 효현(孝顯)왕후 김(金)씨(1828-1843.14세)와 효정(孝定) 왕후 홍(洪)씨 (1831-1904.73세)의 능 (삼연능)
혜릉에 묻힌 경종비 단의왕후는 세자빈 신분으로 죽었고, 자손도 없어 특별한 기록도 없다. 병약한 왕(경종)에 무자식이니 그러하다. 노론은 연잉군을 세자에 앉히고자 수차례 경종을 축출하려 했다. 경종은 병약하기도 했지만 독살 시도가 있었기에 독살에 대한 의문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장희빈의 연적이자 정적인 숙빈 최 씨의 아들 연잉군이 30세에 왕(영조)이 되었다. 영조는 왕이 되자 노론을 축출하고 소론에게 정권을 넘겨 경종 독살설의 의심을 없애고자 하였다. 그러나 양반의 군역 면제 등을 손을 대려 하여도 왕권은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영조의 모친 추승작업에 노론들이 제동을 걸자 영조는 화가 났다. 소론 강경파가 나주벽서사건을 통해 '간신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라고 하고,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500여 명을 처형하며 이성을 잃기 시작하였다.
영조는 과거사 지우기가 한계에 이르고, 노론의 독주는 계속되었다. 수차례 왕위를 이양하는 흉내를 내던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게 하였다. 노론의 정국에 사도세자가 불만을 갖자 노론의 칼끝은 사도세자를 겨냥하였다. 노론을 비판하는 자가 급제를 하자 삭제를 요구하는 노론에 사도세자가 거부를 하고, 벽서사건에 대해서도 사형을 거부하는 등 노론 정책이 막히자 노론은 사도세자를 제거하기로 한다. 사도세자의 장인인 혜경궁 홍 씨 아버지 홍봉한이 앞장서 뒤주의 비극을 만들었다. 51살 어린 왕비를 들여온 영조의 장인도 합세하였다. 노론이 사도세자를 제거하는 당론에 영조도 동조하며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몰아 죽였다. 영조의 탕평책은 오락가락했으며, 노론의 칼끝은 손자 정조까지 겨누었다. 영조는 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가장 길게 왕위에 있어 사연이 많다.
수릉에 묻힌 추종 문조는 순조의 첫째 아들이다. 순조대에 기근, 전염병, 민란, 역모사건으로 어려웠는데, 그 아들 효명세자가 문조이다. 21세에 요절하였는데, 예술적 문학적 조예가 깊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요절하기 전 3년 3개월 동안 대리 청정하였는데, 세도정치를 견제하는데 역량을 보였다. 궁중무용과 연향의 절정을 이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함께 묻힌 신정왕후는 아들 헌종을 낳았고, 82세까지 천수를 누려 풍양 조 씨 세도정치 중심에 있었다. 그다음 대인 철종이 승하하자 종친 이하응을 끌어들여 고종을 자신의 양자로 들여 왕위 승계를 주도하였고, 고종이 어릴 때 수렴청정을 하고 권력을 흥선대원군에게 인계하였다.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손자 헌종이 일곱 살에 왕위에 오른다. 나이가 너무 여려 순조 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 씨가 6년 동안 수렴청정하였다. 장동 김 씨에 이어 풍양 조 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정치로 삼정은 문란하였고 계속된 홍수로 백성들의 삶은 몹시 어려웠다. 헌종은 혹독하게 천주교를 탄압하여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학살되었다. 헌종은 재위 3년에 효현왕후를 들였으나 6년 후 왕비는 후사 없이 먼저 세상을 뜬다. 다시 효정왕후를 들였으나, 후사를 위해 또 경빈 김 씨를 들인다. 그리고 경빈 김씨를 위해 창덕궁에 낙선재를 지어 신방을 꾸린다. 그러나 헌종은 경빈을 맞은 후 2년도 못 살고 스물둘에 세상을 떴다. 결국 후사는 없었다. 두 왕비와 같이 세 사람이 누운 삼연릉이다. 왕권이 허약하여 미리 자리 잡은 왕비능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자리 잡은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쌓은 업적도 없고 삶이 그러해서 그러한지 외진 곳에 들어앉은 모양새다.
봄에 동구릉에 가면 노란빛 꽃잎이 아름다운 꽃나무가 여럿 있다. 개느삼, 골담초, 으아리, 개옻나무, 고로쇠나무가 있고, 병아리꽃나무, 팥배나무 등 흰꽃도 있어 아름답다. 가을이 되니 대부분은 열매를 찾기 힘든데, 병아리꽃나무는 반짝이는 새까만 열매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정자각 앞 제사 진설도에 차림의 종류가 많다. 조선 후기에 흉년이 계속되자 영조는 제사상에서 개암 같은 드문 종류는 줄이라고 하였다. 가을이 되자 동구릉에도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쪽동백나무는 아예 오그라졌다. 비술나무도 잎이 다 떨어져 잔가지가 머리숱을 늘어뜨려 파란 하늘에 투영하니 아름답다. 영조 때는 죄인을 심문하던 중 떨어진 오동잎에 글을 썼다는 얘기가 나온다. 잎이 커서 종이 대신 썼던 모양이다. 오동잎이 떨어진 철이니 가을이었다. 오동잎 떨어지자 시를 쓴 왕, 정쟁 풍파에 휩쓸리며 지나던 왕.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꽃은 지고 낙엽이 흩어졌다. 왕의 숲길에 가을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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