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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14. 양주 온릉 (溫陵.중종 원비 단경왕후)

향곡[鄕谷] 2021. 12. 14. 20:16

 

왕릉과 숲 14

 

양주 온릉 (溫陵. 중종 원비 단경왕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 19

 

 

온릉(溫陵) : 조선 11대 중종(中宗) 원비 단경(端敬) 왕후 신(愼)씨 (1487-1557.70세)의 능(단릉)

 

 

 

온릉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의 능이다. 왕과 왕비가 함께 묻혀 있으면 왕릉 이름이 하나, 따로 있으면 능 이름을 따로 가진다. 온릉(溫陵)은 평생 자식 하나 없이 중종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중종반정이 성공하여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은 왕이 되고, 부인은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중종의 처남 신수근의 딸이란 이유로 왕비가 된 지 일주일 만에 반정 권력에 의해 폐비가 되어 원래 살던 인왕산 기슭으로 쫓겨났다. 신수근은 연산군 재위 시절에 좌의정이었다. 신수근의 누이는 연산군의 비 신 씨이고, 딸은 진성대군(후에 중종)의 부인이다. 신수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반정에 가담할 처지가 못되었다. 결국 신수근은 죽임을 당하고, 누이와 딸은 일주일 사이에 왕비 자리에서 모두 폐위되었다.

 

인왕산 아래 선바위 옆으로 난 한양도성 인왕 성곽을 따라 오르면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가까이 경복궁과 남산을 비롯한 시내 중심부가 눈 아래로 보인다. 인왕산 동편에 경복궁 방향으로 넓은 치마바위가 펼쳐져 있다. 중종이 왕비를 그리워하여 인왕산 쪽을 늘 바라본다는 소문을  듣고, 중종 비가 산에 올라 치마를 널었다는 바위다. 반정에 가담하지 않고 왕이 된 중종은 힘이 없었던 왕이라 왕비를 지켜주지 못하였다. '그러면 내가 아내를 내치란 말이냐'라고 얘기 한번 해보지도 못하였다. 이곳 바위는 조선 영조 때 겸재 정선이 구름이 넘실거리는 인왕산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이 인왕제색도(仁王齎色圖)이다. 거대한 바위를 묵직하고 실감 나게 잘 표현한 그림이다.

 

폐비된 신 씨는 자식도 없었고, 궁궐에서 나와 51년을 지내다가 70세에 세상을 떠나 친정 묘역인 양주 장흥에 묻혔다. 13대 임금인 명종은 중종의 제2 계비인 문정왕후의 아들이다. 명종에게는 폐비 신 씨가 큰어머니뻘인 셈이다. 명종은 신씨의 장례에 물품을 내려 장례를 돕고, 신수근의 손자가 제사를 지내게 했다. 숙종때(숙종24년.1698년) 노산군(단종) 복위 때 같이 복위하자는 상소가 있었으나 의견이 분분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제수는 국가에서 마련하도록 했다. 그러다가 폐비 신씨 사후 182년이 지난 영조 15년(1739년)에 복위하였다. 폐비 신 씨는 아비를 원망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중종은 죽어서도 제2계비 문정왕후가 드세어 원비와 같이 묻어달라는 말도 못 했을 것이다. 단경왕후는 그렇게 7일간 왕비 자리에 있다가 쫓겨난 비운의 여인이다.

 

온릉은 1호선 가능역이나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로 교통이 불편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 산책 나온 마을 어르신들이 몇 분 보인다. 당초 왕릉으로 자리 잡았던 곳이 아니지만 능역은 양지바르고 편안하다. 추봉 된 왕비의 예가 된 정릉(태조계비 신덕왕후)과 사릉(단종비 정순왕후)의 상설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은 없고, 능침 주위로 석양과 석호가 한쌍만 있고, 무인석도 없다. 정자각을 올려보았더니 잡상도 없다. 수복방 터는 주춧돌이 남아 있다. 주변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지만 작은 금천교를 배치하였다. 능 앞으로는 작은 산책로가 있다. 나무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참나무, 소나무, 서어나무가 대종을 이루고 진달래가 많다. 산도 나무도 능을 따라 잔잔하고 편안하다.   

 

 

 ※ 대중교통 : 1호선 가능역 1번 출구에서 38번, 360번 버스(30분),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에서 360번 버스(30분). 하차 버스정류장 명칭 '신흥유원지'에서 내려 도보 10분

 

 

 

 

   

 

온릉은 병풍석,난간석,무인석이 없다.

 

 

 

수복방 터에는 주춧돌만 남았다

 

 

 

 

 

산책길 옆에는 나무전봇대가 서 있어서 나무와 분간을 하기 어렵다

 

 

 

서어나무 겨울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