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과 숲 22
고양 서오릉 3. 순창원(順昌園. 순회 세자), 홍릉(弘陵. 영조 원비), 수경원(綏慶園. 사도세자 생모)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6
순창원(順昌園) : 순회 세자 (順懷世子. 조선 13대 명종의 아들. 1551-1563.12세)와 공회빈(恭懷嬪) 윤(尹)씨(1552-1592)의 원(합장원)
홍릉(弘陵) : 조선 21대 영조 원비 정성(貞聖) 왕후 서(徐)씨 (1692-1757.65세) 능 (단릉)
수경원(綏慶園) : 영빈(暎嬪) 이(李)씨 (추존 장조(사도세자) 생모. 1696-1764(68세)) 원 (단원)
서오릉이 능지로 선택된 것은 세조 맏아들(뒤에 덕종으로 추존)이 죽어 능지를 찾다가 세조가 답사한 뒤 경릉터로 삼은 것에서 시작한다. 서오릉 전체면적은 55만 평으로 동구릉 57만 평 다음으로 넓다. 다섯 왕릉이 있어 서오릉이지만 2기의 원(園)과 1기의 묘(墓)가 더 있다. 서오릉에 있는 순창원은 조선 13대 왕 명종의 아들 내외가 묻힌 능이다. 어머니 치마폭에 휩싸여 큰 명종은 인순왕후 심 씨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 아들이 순회세자로 12살에 요절하여 왕후에게서 난 자식이 대를 잇는 맥이 끊겼다. 명종도 서른셋에 죽어 후사 생산이 끊어진 것이다. 순회세자의 부인 공회빈 윤 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죽었다. 장례를 준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궁궐 후원에 시신을 임시로 묻었다. 그러나 왜란 중 궁궐이 불타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신주를 만들어 순회 묘에 같이 묻었다. 순회 묘는 나중에 순창원이라 이름을 고쳤다. 임진왜란이 할퀸 상처가 이곳에도 있다.
홍릉(弘陵)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무덤이다. 정성왕후는 자식 없이 예순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성품이 후덕하여 시호가 존호인 혜경부터 왕후까지 스무 글자나 된다. 궁궐생활에서 풍파가 없고 권세를 휘두르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살았던 것이다. 왕과 왕비만 쓰는 이름엔 존호, 묘호, 전호, 능호가 있다. 존호는 살아서 받은 이름이요, 나머지는 죽어서 받은 이름이다. 전호는 국왕 위패를 모신 사당 이름이고, 능호는 시신을 안치한 무덤 이름이며, 묘호는 시호인데 우리가 부르는 왕명이다. 살아생전 불렀던 것은 아니라 죽어서 평가해서 받는 이름이다. 영조는 왕후 묏자리를 정하면서 자신도 그 곁에 묻히길 원하여 비워두었다. 그러나 다음 왕인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를 동구릉에 묻었다. 효종이 묻혔다가 여주로 이전한 파묘 자리에 영조가 들어갔다. 정조는 영조나 어머니 혜경궁 홍 씨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광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서 그랬을지 모르겠다. 홍릉 정성왕후 능 옆 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고, 석물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수경원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 씨가 묻힌 무덤이다. 영빈 이 씨는 숙종 때 궁녀가 되었다가, 영조의 후궁이 되어 영빈에 책봉되었다. 왕족을 제외한 궁중에 모든 여인들이 궁녀(宮女)인데, 보통 상궁(尙宮)과 나인(內人)으로 분류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궁중 처소에서 막일을 하는 무수리, 약방에서 일하는 의녀도 포함한다. 후궁은 사대부 출신들인 간택후궁이 있고, 그 외 궁녀로 승은을 입은 승은후궁이 있다. 영조는 정비 소생이 아니었고 그 또한 정비로부터 자식을 얻지 못했다. 두 명의 정비는 자식이 없었고, 정빈 이 씨로부터 얻은 맏아들 효장세자는 9살에 죽었고, 영빈 이씨 소생 둘째가 사도세자이다. 영빈 이 씨는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고 2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수경원은 의열묘란 이름으로 연세대 교정에 있었는데, 고종 때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수경원이라 하였고, 1970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왕의 생모(추존왕 포함)이면서 대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사당인 칠궁은 청와대 서쪽 궁정동에 있다.
홍릉 금천교 앞에 귀룽나무가 서 있다. 구룡목이란 한자 이름에서 나와 구룡나무라 부르다가 귀룽나무가 되었다. 봄이면 잎이 미리 나오고 나중에 피는 하얀 꽃이 아름답다. 금천교 귀룽나무 옆에서 홍릉을 보면 영조가 나중에 묻히고자 하였던 텅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홍릉에서 익릉으로 가면 이곳을 풍성하게 하는 넓은 소나무 숲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보호를 받는 나무가 소나무다. 경국대전에 송목금벌(松木禁伐)이라 하여 소나무를 베면 곤장을 때렸다. 백성들보다 대접을 더 받는 소나무이니 궁궐에선 말해 무엇하리오. 작은 단풍나무가 소나무 앞으로 줄을 서 있고, 신나무, 참빗살나무, 갈매나무가 수경원 앞에 서 있다. '짙은 초록빛'의 다른 이름은 '갈맷빛'이다. 갈매나무 껍질을 벗겨 삶은 물에 염색을 하면 갈맷빛을 얻을 수 있다. 7품 이하 관리들이 입던 녹포를 그렇게 물들였다. 바람에 날리던 낙엽이 수경원 무덤 앞으로 한 움큼 날아 들어간다. 사도세자가 어릴 때 시를 지어 대신들에게 수시로 나눠주었다는데, 사도세자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일까? 오래 살지 못하는 벚나무가 왕릉에 많다. 화려하게 꽃을 피워 힘을 다 쏟고 벌레들이 해롭게 하여 오래 살지 못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삶이 그러하였다. 그래도 왕이 되려 하였다. '백성을 위한 왕이 되시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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