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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23. 서울 의릉(懿陵.경종)

향곡[鄕谷] 2022. 1. 2. 09:41

 

왕릉과 숲 23

 

서울 의릉(懿陵. 경종)

 

서울 성북구 석관동 산 1-5

 

 

의릉(懿陵) : 조선 20대 경종(景宗. 숙종 맏아들. 장희빈의 아들. 1688.10-1724.8(36세). 재위 4년 2개월(1720.6-1724.8))과 계비 선의(宣懿) 왕후 어(魚)씨(1705-1730.25세)의 능(동원상하릉)

 

 

 

숙종은 정비가 셋이었으나 후사를 얻지 못하였다. 원비 인경왕후를 잃은 뒤 장옥정이 들어왔으나 숙종의 모친인 명성왕후 김 씨가 장 씨를 쫓아내고 숙종은 인현왕후와 혼인하였다. 인현왕후가 후사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명성왕후가 죽자 숙종이 장옥정을 다시 데려와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숙종의 첫아들(뒤에 경종)이고, 장옥정은 희빈이 되었다. 숙종이 두 살 된 아들을 종묘에 원자로 고하자, 송시열이 왕비가 젊어 후손을 볼 수 있는데 너무 빠르다며 반대하였다. 그러자 숙종은 정권을 바꾸기로 하였으니 기사환국이다. 재집권한 남인은 정치보복을 하여 숙종이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고, 서인의 후예인 노론과 남인의 싸움은 더 심해졌다. 결국 인현왕후를 내쫓고 중전이 된 장희빈은 탐욕이 심해지자 다시 내쫓고, 인현왕후가 다시 들어왔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숙종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죽게 하였다고 사약을 내린다. 사약을 받는 현장에서 아들을 보고 싶다 하여 데려왔는데 아들의 낭심을 거칠게 당겨 그 뒤에 아들은 앓기 시작하였다.

 

숙종과 노론은 병약하고 장희빈의 피가 흐르는 세자가 마땅찮았다. 이복동생 연잉군(후에 영조)에게 후계를 맡기는 계책을 세우던 중 숙종이 죽었다. 노론은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경종을 축출하고 연잉군을 옹립하기로 하였다. 아들이 없는 서른세 살 임금에게 후사를 세우라고 요구하였다. 즉위한 해에 연잉군을 세자로 정하니, 이번에는 왕이 쇠약하다고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33살의 왕에게 27살 세자가 대리 청정한다는 것은 물러나라는 얘기였다. 경종은 수락하였으나 이후 두 차례 사화(士禍)로 노론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경종은 선왕의 유일한 혈육인 연잉군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노론은 경종을 독살하기로 하였다. 1차 독살 실행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즉위 4년에 경종은 흉통과 복통으로 의문사했다. 그 뒤 경종독살설은 왕위에 오른 영조의 발목을 잡았다. 잡배와 같은 석연찮은 수단으로 권력을 잡은 노론정권은 정치체계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선의왕후는 경종의 두 번째 왕세자빈으로 들어왔다가 왕비에 오르고,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 경순왕대비가 되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의릉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거주하는 번잡한 곳에 있다. 1962년부터 1995년까지는 중앙정보부 청사가 이곳에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1972.7.4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한 강당 건물만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 금천교 부근에는 참빗살나무, 모감주나무, 미선나무 등 작은 키 나무들이 있다. 모감주나무에는 윤기가 나는 세모꼴 초롱 모양 열매가 달려 있다. 흔들면 소리가 날 듯하다. 열매는 금강자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듯 단단하다. 여러 나무 중 모감주나무 열매로 만든 염주는 큰 스님이나 지닐 수 있을 만큼 귀했다. 왕릉은 앞뒤로 자리 잡고 있다. 왕릉을 앞뒤로 쓴 것은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함이다. 앞은 왕후릉 뒤는 왕릉으로, 곡장을 뒤에만 둘러서 쌍릉임을 나타내고 있다. 석물은 병풍석이 없고, 배치와 규모는 작고 간소하다. 능 옆 산책로 입구엔 근사한 향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측정 당시 수령이 160년이니 왕릉을 조성한 뒤에 심은 나무다. 나무 색깔이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이라 자단(紫檀)이라 하고, 향기가 난다고 목향(木香)이라고도 부른다. 산책로 뒤로 돌아가면서 회양목, 자귀나무, 자작나무, 쥐똥나무, 산딸나무 몇 그루가 줄지어 섰다. 이어서 강당 건물을 돌아 나오면 다시 능역 앞쪽이다. 앞으로는 소나무과 나무들이 주종이다. 식생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좁은 공간에 알뜰히 심었다. 그러나 주변은 건물과 도로로 막혀 있다. 경종은 살았을 때나 죽어서도 권력의 틈바구니와 도시 속에 갇힌 왕이다. 그것이 경종의 운명이던가.

 

 

 

 

의릉 (경종과 선의왕후릉)

 

 

참빗살나무

 

 

모감주나무

 

 

 

의릉

 

 

 

의릉(선의왕후) 석물

 

 

 

의릉(선의왕후) 석호와 난간석

 

 

 

의릉(선의왕후) 석양과 난간석

 

 

 

의릉(경종릉)

 

 

 

향나무

 

 

 

자작나무

 

 

 

구 중앙정보부 강당 / 7.4 남북공동성명 발표강당

 

 

 

회양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