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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한 바퀴

향곡[鄕谷] 2014. 5. 11. 19:12

남한산성 10


남한산성 한 바퀴

치욕의 역사와 백성의 고초가 있던 곳

 

경기도 광주-하남-성남 (2014.5.10)

거여동-호국사-서문-북장대지-북문-동장대지-장경사-동문-남장대지-남문-수어장대- 서문-호국사-거여동 (6시간 10분)

 

  

 

남한산성은 치욕의 역사를 지울 수가 없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항복의 내용도 치욕적이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한 임금과 정치가는 물론이요, 혹한에 군사나 백성은 몸을 가릴 옷이 없이 추위와 싸웠고 양식이 없어 배를 곯았으니, 그 고초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문을 나갔던 군사 전원이 몰살한 북문을 역설적으로 전승문(全勝門)이라 하였듯, 그 억지가 현실로 이뤄졌으면 얼마나 좋으랴. 과거만 얘기하기는 서글픈 일이다. 전진을 못하면 실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 일이 어찌 성공만 있으랴. 실패를 밟고 지나가는 수 밖에 없다. 뼛 속까지 파고 드는 추위가 있었으니 코를 찌르는 매화의 향기가 있다지 않는가?

 

이제 그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한다. 수비의 성으로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만에 올라왔더니 성은 너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이렇게 다 고쳐버리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낮은 담장을 여장(女墻)이라 하는데, 그 여장은 대부분 새로 세웠다. 산이 구불구불하니 성도 구불구불하다. 성이 구불구불하니 적을 관측하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배를 곯으면 안에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다. 고초는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여러 군데서 다가오는 법이다. 반성하며 살아야 할 일이 많다.  

 

 

 

 

서문 (右翼門) / 인조는 이 문으로 항복하러 내려갔다

 

 

 

 

 

북문(全勝門)

 

 

 

 

암문

 

 

암문이 있는 성

 

 

 

왼쪽은 남한산성 외성인 봉암성 가는 길이다

 

 

 

봉암성은 허물어진 그대로이다

 

 

 

동장대지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

 

 

 

장경사신지 옹성

 

 

 

동문(左翼門)

 

 

 

옹성치 / 적을 살피고 공격을 쉽게 하기 위해 틔어 나오게 한 곳

 

 

 

옹성치 바깥

 

 

 

남문(至和門) / 지화문은 문을 개축하며 영조가 붙인 이름이다

 

 

 

수어장대(守禦將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