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32
남한산성 벌봉 ~ 객산
산성리에서 선법사로 가는 역사의 길
남한산성 산성리 종점(300) - 현절사 - 동장대터 - 벌봉(512.2) - 바람재 - 전망바위 - 막은데미고개 - 사미고개(219) - 객산(292.1) - 선법사 - 광주향교
이동거리 10.3㎞. 이동시간 4:02 휴식시간 0:47. 계 4:49 (2024.7.19. 흐림. 24.2~30.8℃)
며칠 오던 비가 그치고 날씨는 흐리다. 남한산성 지도를 살피던 중 선법사를 지나 광주향교로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남한산성 산성리 종점에서 시작하면 계속 내려서는 길이라 힘도 들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내린 산성리 종점은 남한산성 종로이다. 천흥사 동종이 있는 종각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산성리 종점 해발은 300m로 벌봉(512.2m)을 지나 위례둘레길(샘재)이라고 표시한 이정표를 따라서 객산(292.1m)을 지나서 가면 된다.
비가 온 뒤라 현절사 앞 도랑물은 콸콸 흐르고, 옥정사터 길가에도 작은 물길이 생겼다. 현절사(顯節祠)는 병자호란 때 삼학사와 척화파 모두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옥정사(玉井寺)는 가뭄에도 맑은 물이 나와서 붙은 절 이름이다. 산성 수호에 막사 역할을 하던 절이었는데 일제가 조선인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회수한다고 폭파하였다. 절터는 물을 모으던 돌판만 남아 있다. 동장대터 밖은 광대수염, 속단, 어수리, 짚신나물 꽃이 섞여서 피고 있고, 허물어진 봉암성 성벽과 여장은 풀이 다 차지하였다. 강아지풀이 대군을 형성하여 성벽을 포위하듯 점령하였다.
벌봉 암문을 나가 산길이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가지울을 지나면 법화골 가는 길이 나온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의 매부인 양고리가 전사하였다. 청나라는 그의 영혼을 달랜다고 고향(法華)의 지명을 따 법화암(法華庵)을 세울 것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세운 암자가 있던 골짜기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도 몇 기가 남아 있다. 가는 길엔 토루와 토성이 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본성 바깥에 옹성을 추가하고, 청병이 머물던 벌봉과 한봉에 성을 새로 쌓고, 문루와 장대를 만들고, 토루와 토성을 쌓았다. 전쟁의 형태가 화포로 바뀌었기에 방어선을 넓힌 대비책이었다. 남한산성을 쌓은 지 400년이 되었다. 이제는 상상도 못 할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바람재를 지나 토성 위 산길로 한참을 가면 산이 막고 선 막은데미고개를 지난다. 거기서 한 등성이를 넘어서면 사미고개를 건너 객산 올라가는 길이다. 뒤돌아보면 벌봉에서 내려온 밋밋한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길에는 낙엽송, 팥배나무, 피나무, 신갈나무 등 키 큰 나무가 몇 있지만 소나무가 대세이다. 객산(客山. 292.1m)은 전설에 의하면 바깥에서 온 산이다. 마귀할멈이 딴 데 있던 산을 가져와 한양에 남산만큼 만든다고 치마에 싸가지고 가다가 힘이 들어 여기에 놓고 간 산이 객산이란다. 객산에서는 하남 검단산이 건너다 보인다.
객산에서 선법사 가는 길로 내려섰다. 비 온 뒤라 계곡에 물이 제법 흐른다. 선법사(禪法寺)에는 보물로 지정한 마애약사여래좌상(磨厓藥師如來座像)이 있다. '마애'는 돌에 새겼다는 것이고, '약사여래'는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주는 부처이다. 고려 5대 경종 2년(977년)에 세운 것이다. 이 불상이 특이한 것은 확실한 조성 연도와 조성 경위인 '지금 황제 만세 기원을 위해(爲今上皇帝万歲願)'란 글씨 때문이다. 고려는 4대 광종 때부터 황제라 하였는데, 다음 임금도 황제를 썼다는 기록이다. 고구려와 신라는 왕과 황제의 중간인 태왕을 썼다. 광개토대왕비 비문에 호태왕비(好太王碑)가 그것이고, 진흥왕순수비에 진흥태왕(眞興太王)이라 쓴 것이 그것이다. 조선이 들어서고 왕으로 낮추었다. 고려의 역사는 후에 조선이 기록하였는데, 실제로는 언제까지 황제라 썼는지는 모른다.
마애불상 옆으로 객산폭포가 흐르고 그 옆에 온조왕이 마셨다는 샘이 있다. 샘 주변에 뱀 조심하라는 경고가 있어 조심스레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백제 시조 온조에 대한 얘기가 전해지는 것이 특이하다. 남한산성에는 온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렬전(崇烈殿)이 있다. 인조의 꿈에 청병의 기습을 알린 온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조상들이 왕을 호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선법사를 나와 광주향교로 갔다. 500년 된 은행나무가 향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산길은 숲이 우거지고 편안하다. 역사가 흐르는 산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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