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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시내를 대야 삼아 / 배려하는 삶

향곡[鄕谷] 2024. 8. 18. 09:24

 

말속에 자연 16

 

시내를 대야 삼아

배려하는 삶

 

 

 

여름 더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뒤적거린다. 중국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누가 가난한 그를 추천하여 현령 자리에 앉았다. 그를 감사하는 관리가 오니까 마중 나오라 하였다. 도연명은 '내가 오두미(五斗米. 녹봉으로 받는 적은 쌀)에 고개를 숙여야 하겠는가' 하며 80일 만에 관직을 그만두었다. 부패한 관리사회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며 귀거래사를 지었다. '실로 인생길 잘못 들어 헤매었건만 멀리 온 것은 아니니, 지금 생각이 옳고 지난 세월 잘못 산 걸 깨달았노라'는 대목이 그의 마음이다. 그런 도연명의 아들이 관직을 맡아 지방에 부임할 때 종을 달려 보내며 말했다. '이 사람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다. 잘 대우하라'. 〈소학〉에 그 말이 나온다.

 

조선조 문신이며 시조작가인 윤선도가 있다. 정쟁으로 17년 유배를 마치고 쉬고 있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로 가는 중에 화의를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를 돌려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에 머물렀다. 그 뒤에도 벼슬살이와 유배를 몇 번 하였다. 그는 자신이 뜻한 바를 위해서는 고집이 있고 칼날 같은 성품이었지만, 백성들을 위해서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세금을 못 내서 옥에 갇힌 사람에게 세금을 대신 내주기를 몇 번 하였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안의 최고 덕목은 '적선과 근검'이라 하였다. 어느 날 윤선도의 시중을 들러 객지까지 따라온 여종이 주인의 세숫대야를 깨 먹었다. 그는 화도 내지 않고 시냇가에 나가 시내를 대야 삼아 세수를 하였다. 아랫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사람이다. 그의 책 여유당전서에 한시 '견여탄(肩與歎)'이 있다. '가마꾼의 탄식'으로 전한다. 4절로 이루어진 한시 1절에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른다네'라고 말한다. 2절은 가마를 메고 길을 가는 과정이다. 3절에는 '가마꾼 숨소리 폭포소리에 뒤섞이고 / 해진 옷이 땀에 베어 속속들이 젖어가네 / 밧줄이 늘어져 어깨에 자국 나고 / 돌에 차여 부르튼 발 미처 낫지 못하네 / 자기는 병들면서 남을 편케 해 주어 / 하는 일 당나귀와 다를 바 하나 없네 / 너나 나나 본래는 똑같은 동포이고 / 한 하늘 부모 삼아 다 같이 생겼는데 / 너희들 어리석어 이런 천대 감수하니 / 아 어찌 부끄럽고 안타깝지 않을쏘냐'라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4절에서는 '기진맥진 논밭으로 돌아오면 / 지친 몸 신음소리 실낱같은 목숨이네 / 이 가마 메는 그림 그려 임금께 보이고 싶네'라 하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배려의 마음이 가득하다. 애초부터 잘못된 노비제도였다. 그는 그걸 비판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임금부터 가지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숫대야를 하인이 준비한 모습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미 깨진 것을 어찌하랴. 사라진 것에 매달리는 것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한다. 너그러워지면 마음이 맑아지는 걸 윤선도는 알고 있다. 화를 내면 고통은 상대방에게는 일시이고 나에게는 길다. 잠시를 참지 못하고 대부분 그걸 놓친다. 인간은 길을 가는 존재이다. 걷는 사람과 마음을 담아 같이 걸으면 행복하다. 가마에 얹혀 가는 길이 행복하겠는가? 조선시대 산행 후기를 보면 하인들이 맨 가마를 타고 산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눈이 찌푸려지는 그 얘기를 자랑스레 적었다. 행복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같이 걷는 일이다. 배려(配慮)는 짝 배(配) 생각할 려(慮)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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