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강원 충청 탐방 46

척주동해비 / 조수를 물리치는 영험한 비

미수 허목이 쓴 글씨, 조수를 물리치는 영험한 비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2016.9.28) 삼척은 동해와 태백에 이리저리 땅덩어리를 떼어 주고도 큰 땅이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가 있고,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쓴 천은사가 있고,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의 조상묘..

미륵리 절터 / 마의태자가 세운 곳, 중원문화권의 핵심 유물

미륵리 절터 / 사적 제317호 마의태자가 세운 곳, 중화문화권의 핵심 유물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2014.9.20) (2023.10.1) 충주호에서 송계계곡을 거쳐 하늘재로 가는 길인 계립령로 분지에 미륵리절터가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고려말까지 남북을 이어주던 주요 교통로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왕 3년(156년) 4월 계립령을 열었다. 죽령이 2년 뒤 열렸으니 가장 먼저 만든 고갯길이다. 한국전이 끝난 후 어느 보살이 덩굴을 걷다가 발견하였다는 곳으로 1970년대 말 본격적으로 발굴하여 중원문화권의 핵심으로 꼽히는 곳이다. 발굴 유물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고려초 사이에 세운 대원사가 있었던 곳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

덕주사 마애불 / 덕주공주가 조성하였다는 전설

덕주사 마애불 (보물 406호) 덕주공주가 조성한 마애불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2014.9.20) 충주호 남한강변에서 송계계곡으로 들어서면 덕주사로 가는 길이 있다. 덕주사는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어, 덕주사가 있던 곳은 터만 남았고, 아래쪽에 하덕주사를 새로 세웠다. 큰길 입구에는 월악산 영봉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띄엄띄엄 산에 오른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피난와서 마애불을 조성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절 들어가는 계곡도 덕주골로 부른다. 덕주사 가기 전에 성루가 보이는 덕주산성은 둘레가 2㎞로 월악산 남쪽 충주에서 문경으로 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 몽고군이 공격할 때는 피난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조선 고종 때 명성왕후가 월악궁을 지었으나 왕후 시해 후 없어지고, 잔재들..

개심사 / 마음을 여는 절집

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여는 절집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2013.11.3) 해미읍성에서 개심사 가는 길은 가깝다. 길 양쪽으로는 목장으로 쓰이는 목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한 때는 김종필 씨가 삼화목장으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산들이 야트막하여 부드러운 맛을 준다. 개심사 아래 주차장은 세심동(洗心洞)이니 마음을 닦을 곳이요, 절에 올라서서는 마음을 여는 곳이 이곳이다. 솔밭길로 가며 마음을 닦는다. 마음 속에 있는 때는 기회가 있을 때 씼어야 한다. 개심사에 들어서면 연못 위 층층 다리 위쪽으로 '象王山開心寺' 현판 글씨가 시원하고도 넉넉하다. 근대의 명필 해강 김규진씨가 전서체로 쓴 글씨인데, 큰 글씨를 부드럽게도 썼다. 해탈문을 들어서니 석탑 왼쪽 심검당(尋劍堂)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까지 ..

해미읍성 / 아름다운 읍성

아름다운 읍성 해미읍성 (海美邑城. 사적116호) 충남 서산시 해미면 관아문길(읍내리) (2013.11.3) 서산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부터 세종 3년(1421년)에 쌓은읍성이다. 충청병마절도사영의 병영성이었고, 그 뒤 해미현감이 있어 읍성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고창읍성인 모양성, 전남 순천시 낙악읍성과 함께 보존이잘된 아름다운 읍성으로 남아있다. 이순신장군도 임진왜란 전에 이곳에서 군관으로 근무하였다. 둘레를 돌아보려면 1.8㎞로 1시간반 정도 걸린다. 전에는 성밖에 탱자나무를 심어 탱자나무성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남문인 진남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서면 성안은 모두 철거하여 관아와 옥사와 만가 몇 채와 주막 등이 남아있다. 옥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