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강원 충청 탐방 50

미륵리 절터 / 마의태자가 세운 곳, 중원문화권의 핵심 유물

미륵리 절터 / 사적 제317호 마의태자가 세운 곳, 중화문화권의 핵심 유물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2014.9.20) (2023.10.1) 충주호에서 송계계곡을 거쳐 하늘재로 가는 길인 계립령로 분지에 미륵리절터가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고려말까지 남북을 이어주던 주요 교통로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왕 3년(156년) 4월 계립령을 열었다. 죽령이 2년 뒤 열렸으니 가장 먼저 만든 고갯길이다. 한국전이 끝난 후 어느 보살이 덩굴을 걷다가 발견하였다는 곳으로 1970년대 말 본격적으로 발굴하여 중원문화권의 핵심으로 꼽히는 곳이다. 발굴 유물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고려초 사이에 세운 대원사가 있었던 곳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

덕주사 마애불 / 덕주공주가 조성하였다는 전설

덕주사 마애불 (보물 406호) 덕주공주가 조성한 마애불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2014.9.20) 충주호 남한강변에서 송계계곡으로 들어서면 덕주사로 가는 길이 있다. 덕주사는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어, 덕주사가 있던 곳은 터만 남았고, 아래쪽에 하덕주사를 새로 세웠다. 큰길 입구에는 월악산 영봉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띄엄띄엄 산에 오른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피난와서 마애불을 조성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절 들어가는 계곡도 덕주골로 부른다. 덕주사 가기 전에 성루가 보이는 덕주산성은 둘레가 2㎞로 월악산 남쪽 충주에서 문경으로 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 몽고군이 공격할 때는 피난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조선 고종 때 명성왕후가 월악궁을 지었으나 왕후 시해 후 없어지고, 잔재들..

개심사 / 마음을 여는 절집

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여는 절집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2013.11.3) 해미읍성에서 개심사 가는 길은 가깝다. 길 양쪽으로는 목장으로 쓰이는 목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한 때는 김종필 씨가 삼화목장으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산들이 야트막하여 부드러운 맛을 준다. 개심사 아래 주차장은 세심동(洗心洞)이니 마음을 닦을 곳이요, 절에 올라서서는 마음을 여는 곳이 이곳이다. 솔밭길로 가며 마음을 닦는다. 마음 속에 있는 때는 기회가 있을 때 씼어야 한다. 개심사에 들어서면 연못 위 층층 다리 위쪽으로 '象王山開心寺' 현판 글씨가 시원하고도 넉넉하다. 근대의 명필 해강 김규진씨가 전서체로 쓴 글씨인데, 큰 글씨를 부드럽게도 썼다. 해탈문을 들어서니 석탑 왼쪽 심검당(尋劍堂)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까지 ..

해미읍성 / 아름다운 읍성

아름다운 읍성 해미읍성 (海美邑城. 사적116호) 충남 서산시 해미면 관아문길(읍내리) (2013.11.3) 서산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부터 세종 3년(1421년)에 쌓은읍성이다. 충청병마절도사영의 병영성이었고, 그 뒤 해미현감이 있어 읍성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고창읍성인 모양성, 전남 순천시 낙악읍성과 함께 보존이잘된 아름다운 읍성으로 남아있다. 이순신장군도 임진왜란 전에 이곳에서 군관으로 근무하였다. 둘레를 돌아보려면 1.8㎞로 1시간반 정도 걸린다. 전에는 성밖에 탱자나무를 심어 탱자나무성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남문인 진남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서면 성안은 모두 철거하여 관아와 옥사와 만가 몇 채와 주막 등이 남아있다. 옥사 ..

천리포수목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천리포수목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충남 태안군 소원면 (2013.11.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니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다. 천리포수목원을 만든 사람은 파란 눈의 한국인인 민병갈박사(1921~2002)이다. 청년장교로 미국에서 와서 이 땅에 반 세기 넘게 살면서 귀화해서 천리포수목원을 가꾸어서 전 재산을 남기고 이 땅에 잠들었다. 14000여 품종이 있는 이 수목원은 나무가 주인이다. 18만평 중 2만평을 개방하고 있는데, 비료도 가지치기도 살충제도 영양주사도 놓지 않는 자연 그대로 사는 나무의 왕국이다. 1970년에 처음 나무를 심었다. 물이 적으면 연못을 만들고, 바람이 많으면 방풍림을 만들었다. 잉여종자목록을 만들어 다른 나라들과 종자를 교환하여 세계적 수목원을 이루었다. 이곳 ..

안면도 꽃지해변

안면도 꽃지해변 충남 태안군 안면읍 (2013.11.2~11.3) 태안은 고려 때에 얻은 이름이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뜻이다. 태안에 안면도에는 패총군이 있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안은 지리적으로 중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곳에 있어 태안마애삼존불등이 남아 있다. 태안반도는 몇 년 전 배에서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로 고생을 겪은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구를 위해 눈물겨운 봉사를 하여 가슴을 뭉클하게 한 곳이기도 하다. 자연이 훼손되면 되돌리기 위한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된 사건이었다. 저녁 느즈막에 꽃지해변으로 갔다. 육지가 바다로 툭 튀어 나온 곳이 곶이니 지형은 곶지가 맞다. 이것이 경음화되어 꽂지가 된 것인데, 꽃지로 부..

간월도 / 무학대사가 깨우친 곳

간월도 무학대사가 깨우친 곳 충남 서산군 부석면 간월도리 (2013.11.2) 충남 예산에서 안면도 들어가는 천수만방조제를 타고 가다보면 방조제 끄트머리 왼쪽으로 간월도가 있다. 이제는 간척사업으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 이름나서 옛날부터 임금님께 진상하였다 한다. 그 간월도에 간월암이 있다. 조선 건국을 도운 무학대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도를 닦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달을 보고 홀연히 깨우쳐서, 이곳 절이름이 볼 간(看),달 월(月)을 써서 간월암이 되었고, 섬 이름도 간월도로 바뀌었다. 무학은 서산에서 태어났다. 무학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나라의 세금을 내지 못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현청에 붙들려 가는 도중 산기를 느껴 아이를 낳아 양지볕..

수덕사 / 예산 탐방의 백미

수덕사 예산 탐방의 백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13.11.2) 예산 탐방의 백미를 수덕사로 친다. 그것은 대웅전이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수덕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본다.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대웅전이다. 고려시대 목조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세번째 오래된 목조건물로 1308년에 세웠으니 700년이 넘었다. 칸살이 좁은 창살은 촘촘하여 꽉 짜인 느낌을 주고, 맞배지붕에다가 옆 벽면은 단순하고 공포는 주심포여서 시원한 맛이 있고, 기둥은 배흘림으로 탄력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움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수덕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소설과 비소설로 전하는데, 경허와 만공과 일엽스님의 일화가 주조이다. 최근에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

남연군묘 / 흥선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곳

남연군묘 흥선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곳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2013.11.2. 비) 남연군묘는 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묘이다. 남연군묘는 독일 상인인 오페르트가 묘를 도굴하는 사건을 일으키며 역사의 전면에 나온다. 남연군이 죽자 어느 지관이 찾아와서 말하길, 가야산에 묘를 쓰면 2대에 천자가 나올 것이요, 오서산에 묘를 쓰면 만대에 영화를 누릴 것이라 하였다. 대원군은 짧지만 굵은 전자를 택하였다. 묘를 쓰려던 곳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가야사를 불태우고 탑이 있던 자리에 남연군묘를 경기도 연천에서 옮겼왔으니 그의 야망을 이곳에 묻은 것이다. 묘를 옮기고 7년 뒤 둘째가 나고, 또 12년 뒤에 그 아들은 왕(고종)이 되고, 손자가 또 왕(순종)이 되었으니 소원은 이룬 셈이나 뒤끝은 허망한 일이 되었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

윤봉길 의사 사적지 사적 제229호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2013.11.2. 비) 예산에서 수덕사 가는 길 조금 못미쳐 윤봉길(1908~1932) 의사 사적지가 있다. 식민지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며 자퇴 후 농민계몽운동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상해로 가서 홍구공원에서 벌어진 일본 천왕 생일 축하연에서 도시락폭탄을 터뜨려 파견 사령관을 폭사시킨 열혈 청년이었다. 당시 중국 총통인 장개석이 중국군 백만 군대가 하지못한 일을 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그는 일본으로 호송되어 25세 젊은 나이에 총살형을 받았지만 그의 굳굳한 기개는 국민들 가슴 속에 지금도 살아 있다. 그의 유해는 충의사에 모시었다. 윤의사 사당이 있는 충의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가면 두 물길이 만나는 가운데에 도중도(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