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걸어서 보는 세상 347

한양도성 4 / 낙산공원-말바위

한양도성 4 낙산공원-말바위 낙산공원-혜화문-경신고-서울과학고-말바위 (2010.4.15) 한양도성이 축성된 때인 조선시대 태조, 세종, 숙종 연간의 성곽과 최근 복원한 성곽의 모습은 후대로 오면서 성벽에 들어간 돌 크기가 커지고 다듬어지는 형태를 이루었다.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오르는 성곽은 아직 주변 정리가 진행 중이지만 낙산공원부터 혜화문까지는 복원이 많이 되었다. 북한산 조망이 트이고 걷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다만 혜화문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는 성곽은 주택의 축대가 되기도 하고, 성곽 위에 학교 담을 쌓고, 체육시설을 세우면서 보기 흉한 건물을 두는 등, 어수선한 시절에 마구잡이 건축으로 성곽이 유실된 곳이 많아 손 봐야 할 곳이 많다. 기왕에 손을 본다면 일률적으로 같은 내..

인왕스카이웨이-백사실계곡 걷기

인왕스카이웨이-백사실계곡 걷기 서울 종로구 사직동, 부암동 (2010.4.6) 경복궁역-사직단-단군성전-등과 정터-인왕스카이웨이-윤동주시인의 언덕-창의문-백사실계곡-세검정-홍지문-석파정별당-석파정-현진건 집터-안평대군 집터-부암동 주민센터(약 3시간) 인왕산 일원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이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 장동(壯洞)이 있었다. 율곡학파의 발상지이고 장동 김 씨의 터전이었다. 지금 경복고등학교 자리에는 겸재 정선이 살았다. 겸재의 집 인곡유거에서 한양 절경을 화폭에 담아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겸재가 세상을 뜬 지도 250년이 지났다. 이제 와서 그림 속 그 옛날 풍경을 볼 수는 없다. 그래도 백사실계곡은 그림처럼 다시 살아난 자연이 숨을 쉬듯 호젓해서 좋고, 대원군별장과 안평대군 집터는 명맥을..

북촌길 2

북촌길 2 서울 종로구 가회동,삼청동 일원 (2010.3.24) 안국역3번출구-북촌문화센터-창덕궁서쪽길-궁중음식연구원-가회동 일원-정독도서관(종친부)-윤보선가-안국역1번출구 북촌은 동서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이고, 남북으로는 율곡로와 북악산 이남으로 여러 동네가 있으나 가회동과 삼청동이 중심이다. 배산임수가 좋아 예로부터 권력을 쥔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양반들이 살았던 동네라 고루거각이 많은 곳이었지만 몰락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집이 나눠지고 없어져 북촌에 있던 한옥들은 많이 사라졌다. 최근 옛 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뜻이 살아나 북촌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다시 모습을 살리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돌이키기엔 허물어진 세월이 길었다. 북촌문화센터 북촌마을 가회동 일원 북촌마을 삼청동 길가..

한양도성 3 / 흥인지문-낙산

한양도성 3 흥인지문-낙산 동대문운동장-흥인지문-낙산공원 일원 (2008.9.20) 광희문에서 끊어진 한양도성 탐방을 이어갔다. 이미 헐린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옛 성터 발굴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흥인지문 부근 조경도 아직 현재진행형 이었다. 성의 원래 의미인 울이 안팎을 구별하고 폐쇄적인 것이나, 낙산 부근에서는 그것을 정리하기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관리도 그러하지만 주변에 서민층 주택이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올라가는 도중 쉼터에서 남녀 두 분이 북 장단에 맞추어 추임새를 넣어가며 판소리를 하고 있었다. 세상 사는 갈증을 소리로서 아침을 열고 있었다. 동대문운동장 발굴 현장 흥인지문

한양도성 2 / 버티고개-광희문

한양도성 2 장충동 부근 버티고개-장충동 성곽길-성당길-수구문길-광희문 (1시간 반. 2008.8.16) 조선 태조는 서울을 방위하기 위하여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따라 성을 쌓았고, 사대문과 사소문을 지었다(태조 4년 1395년). 그 뒤 세종 때(세종 4년 1422년) 대대적으로 고쳤고, 임진왜란 때 부서진 것을 광해군 때(1616년), 숙종 때(숙종 30년. 1704년)와 영조 때(1743년) 계속 고쳐 나갔다. 돌 크기로 보면, 태조 때 쌓은 돌이 다듬잇돌 만해서 장정 한두 사람이 들 수 있는 것이라면, 세종 때 쌓은 것은 장방형으로 만들어 쌀 한가마 만하고, 숙종 때 쌓은 것은 정사각형 2자×2자 정도여서 각기 장정 넷이서 들 정도였다. 다듬은 솜씨와 질감을 보면, 태조 때는 자연석을 구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