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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고궁 능묘 산사 76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1)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1) 후원(後苑) 후원은 한자로, 뒤 후(後) 나라 동산 원(苑)이다. 궁궐의 뒷 정원이니 그리 풀어쓸 수 있다. 1903년부터 숨겨둔 정원이란 뜻인 비원(秘苑)을 썼으나 지금은 공식적인 이름이 후원이다. 부용정(芙蓉亭) 부용은 '연꽃'이란 의미인데, 부용지(芙蓉池) 연못 옆에 세운 정자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부용지 연못은 네모나고, 중간에 있는 조그만 섬은 원형인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사상에 의해 만들었다. 부용정 주합루(宙合樓) 부용지 앞 높은 곳에 서 있는 건물이 주합루이다. 주(宙)는 천자문 앞쪽에 나와서 눈에 익은 글씨인데,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간을 뜻한다. 따라서 주합루는 옛날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시간 적인 영역인 것이다. 주합루 ..

창덕궁 설경

창덕궁 설경 창덕궁(昌德宮) 2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2010.12.28) 창덕궁은 조선 왕실의 동궐로 경복궁이 불이 난 후 가장 오래 왕과 왕비가 머물렀던 공간이다. 그만큼 실록에 자주 등장하였다. 건물은 주변 지형에 거스르지 않게 자연스레 자리 잡았고, 자연을 깊숙이 끌어들인 후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었다. 경인년이 저물어 가는 섣달에,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에 아름다운 궁궐 모습을 구경하러 나섰다. 눈 내려 더 아름답다. ※ 교통편 :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관람시간 : 09:00~17:00 (겨울 기준. 입장은 마감 1시간 전). 매주 월요일은 쉼, 후원은 시간제. 해설사 안내를 받아 관람. 2시간 걸림 창덕궁 희정당(왕과 왕비의 업무 및 생활공간) 희정당 ..

운현궁에 눈 내린 날

운현궁에 눈 내린 날 운현궁 2 / 1864년(고종 1년) 건립, 1996년 중수.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 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 114-10 (2010.12.28)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저였다. 빈(嬪)이나 대군(大君)이나 군(君)은 사저도 궁(宮)이라 하였다. 운현궁 이름을 받은 것은 흥선대원군으로 교지를 내리면서부터이다. 원래 부근에 서운관(書雲觀)이 있었던 고개(峴)에 있었다고 하여 운현궁(雲峴宮)으로 이름 지었다. 뒤에 서운관은 관상감으로 바뀌고 관상감 관천대는 지금 현대 사옥 앞에 있다. 운현궁 건물은 원래 부근 2만여 평이었다가 지금은 2천 평 정도로 줄었는데,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4개 건물이 남아 있다. 노안당(老安堂..

2010년 광화문 주변 풍경

2010년 광화문 주변 풍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2010.10.7) 두 달 전에 광화문이 복원(2010.8.15) 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고, 고종 때 흥선대원군 주도로 경복궁을 지을 때 중건했으나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며 시야를 가린다며 옮겼다. 모두 일본이 정궁인 경복궁 정문 광화문이 바로 서 있는 것을 못마땅해한 것이었다. 광화(光化)는 (임금의)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敎化)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니, 일본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늦었지만 다시 복원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처마선이 잘 빠져 모양도 날렵하다. 남문이라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朱雀)이 그려져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과 왕비가 드나들었지만, 동문은 문관이 서문은 무관이 드나들었으니, 수문장 교대식을 하러 무관이..

창덕궁 후원 / 자연의 모습을 살린 아름다운 왕실 정원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 자연의 모습을 살린 아름다운 왕실 정원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안 (2010.5.13) 후원을 얼마 전까지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부른 이름을 그냥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쓰고 있는 이름이 아직 얼마나 많을꼬. 양지볕에 있다가 후원 울창한 수림 입구에만 들어서도 시원하다. 자연 속에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진 정원이 아름답다.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용지엔 왕실도서관 규장각이 있는 건물 주합루(宙合樓)가 있다. 규장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이요, 주합루란 우주와 통하는 집이며, 어수문(魚水門)은 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고 지은 이름이어서 부용지는 백성을 위..

창덕궁 / 500년을 창성한 궁궐

창덕궁(昌德宮) 500년을 창성한 궁궐 사적 제122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 (2010.5.13) 조선의 정궁은 경복궁이고, 창덕궁은 경복궁 동쪽에 있다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세운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500년 이상 궁궐의 역할을 지켜왔으니 세월만큼이나 큰 역할을 한 궁궐이다.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타고 고종 연간에 지었으니 그동안 정궁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100년 전 1910년 창덕궁에서 한일합방 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조선의 역사도 창덕궁의 건축물도 비뚤어졌다. 정전인 인정전에 오얏무늬를 넣어 조선왕조를 이왕조 가문으로 격하시키고, 실내장식도 서양식으로 바꾸고, 건축물을 옮기고 줄이는 등 왕조의 체면만이 아니라 궁궐의 모양새가..

종묘 2 / 왕과 왕비의 사당

종묘(宗廟) 2 왕과 왕비의 사당 서울 종로구 훈정동 (2010.4.16)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은 신위가 없고, 명예를 회복한 단종은 신위를 모셨으며, 왕을 낳은 어머니라도 왕비가 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3년상은 궁궐에서 치루며, 그 뒤 종묘로 모셔온다. 역대 왕들의 공신을 모신 사당인 공신당도 따로 있다.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뒤,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어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종묘에서 아름답고 장엄한 행사를 볼 수가 있다. 조선이 개국 후 제일 처음 한 일이 종묘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다음 궁궐을 짓고 도성을..

창경궁 2 / 기쁨을 창성하는 궁

창경궁(昌慶宮) (2) 기쁨을 창성하는 궁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2010.4.12) 창경궁은 세종이 상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에서 시작하여, 성종 때는 생존한 대비를 모시기 위하는 등 왕실 생활공간의 역할이 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일제강점기 때는 창경원으로 유희 공간으로 쓰이고 종묘와 단절시키는 길을 내는 등 왕실의 상실감을 극도로 맛본 좌절의 장소였다. 그래서 내전 터나 궐내각사터 등이 아직도 휑하니 비어있다. 궁궐의 품위를 해치느니 차라리 비어있는 것이 낫다. 창경궁이 창덕궁과 합하여 동궐로 쓰이면서 방위도 동으로 보고 있어 정문 홍화문도 동쪽이다. '널리 덕화가 미치다'는 뜻인 홍화문을 지나면 바로 아름다운 다리 옥천교가 있고, 창경궁에서 일찍 피는 꽃나무들이 모여있다. 일제가 심..

창경궁 꽃 구경 / 실버들 그림자는 물에 젖고 ‥

창경궁 꽃구경 실버들 그림자는 물에 젖고 … 서울 종로구 와룡동 (2010.4.12) 봄 물이 춘당지(春塘池)에 가득 찼다. 실버들 연초록 그림자는 물에 젖고 봄꽃은 한 점 한 점 하늘에 수를 놓는다. * 창경궁 함인정(涵仁亭) 편액에 걸린 시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정말 몇십 년 만에 본 창경궁 꽃구경이었습니다.초등학교 시절에는 일 년에도 서너 번은 그 당시에는 창경원으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손을 잡고 소풍 가던 시절이 아련히 떠 오르는군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2010. 4.14. 원중희

헌인릉 / 태종 이방원과 순조 부부가 묻힌 왕릉

헌인릉(獻仁陵) 태종 이방원과 순조 부부가 묻힌 왕릉 세계문화유산 (2010.4.3)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42 헌인릉은 조선 태종(太宗)과 순조(純祖) 부부의 무덤인 헌릉(獻陵)과 인릉(仁陵)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대모산 아래 헌인릉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능이 순조 부부의 합장릉인 인릉이다. 순조가 왕위에 오른 때는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안동 김씨 세도정치, 홍경래 난 등으로 왕권이 문란하여 조선 붕괴가 급속히 시작된 시기였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는 김조순의 딸로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었고, 자신도 수렴청정을 하는 등 세도정치를 절정으로 이끌며 나라를 피폐시켰다. 그래도 인릉 사초지 계단길 옆에 서있는 소나무 풍경은 아름답다. 살아 생전 정치를 이렇게 청청하게 하였으면 좋으련만 소나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