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고궁 능묘 산사 74

광릉 / 광릉내 숲향이 가득한 왕릉

광릉(光陵) 광릉내 숲향이 가득한 왕릉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009.7.11) 동구릉 탐방을 마치고 포천 쪽으로 길을 잡았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여덟 밤을 머물렀다는 팔야리를 지나 광릉내로 들어섰다. 세조가 생전에 이 숲에 반해 30만 평 산림을 자신의 능역인 '광능내'로 조성하였고, 그 뒤로도 그린벨트로 보호하여 오늘날 아름다운 숲으로 유지하였다. 광릉 숲길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광릉에 들어서니 하늘로 뻗은 울울창창한 숲에서 숲향이 짙다. 싱싱한 숲향에 폐부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 부근에 다다르니 양쪽 능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짙푸른 초록이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다. 능은 정자각과 작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양쪽 언덕에 자리 잡고, 그 언덕은 ..

동구릉 / 조선왕릉으로 처음잡은 터

동구릉(東九陵) ① 조선왕릉으로 처음 잡은 터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2009.7.11) 동구릉은 태조가 후손의 유택으로 터를 잡기를 고심하다가 길지로 낙점하고 터를 잡은 곳이다. 이 터를 잡고 난 뒤 유택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렸다 하여 동구릉 터를 보았던 고개를 망우리로 이름 지었다는 얘기가 있다. 예나 이제나 묘터 잡기는 고심해야 할 큰일이다. 동구릉은 이전에 비공개능이던 숭릉과 목릉을 마저 공개하고 있어 한 바퀴 둘러보려면 두세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 목책으로 막아 정자각(丁字閣) 위로 더 올라갈 수는 없지만 최근 개방한 목릉(선조,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은 둘러볼 수 있도록 하였다. 북한산맥의 정혈(正穴)에 해당한다는 건원릉(태조릉)은 높은 좌대에 앉은 듯 위세가 당당하다. 봉분에다 억새를 ..

홍유릉 / 조선의 마지막 왕릉

홍유릉(洪裕陵) 조선의 마지막 왕릉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경춘국도를 타고 가다가 구리를 지나 남양주시청 못 미쳐 금곡동 오른쪽에 홍유릉이 있다. 사람들이 금곡릉이라 많이 부른다. 왼쪽에 있는 홍릉은 조선 26대 왕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 씨의 능이고, 오른쪽에 있는 유릉은 조선 마지막왕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민 씨와 순정효황후 윤 씨가 잠들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왕릉이요,조선의 최초의 황제릉이기도 하다. 조선이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왕도 황제로 불러서 능도 그 격에 맞게 황제릉으로 조성을 한 것이다. 서오릉, 동구릉, 헌인릉 등 서울 주변 왕릉과 달리 능을 화려하게 꾸미고자 하였으나 석물은 이국적이고 부자연스럽고 표정이 딱딱하다. 통상 다른 왕릉은 재실이 작고 소박하게 꾸몄는데, 홍유릉..

서오릉 2. 예종,숙종,인형왕후가 묻힌 능

서오릉 2 예종, 숙종, 인현왕후가 묻힌 능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사적 제198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2008.12.20) 서오릉엔 지체 높은 왕족들이 묻혀 있지만 왕릉 조성을 주관한 세조나 숙종은 왕릉을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하여 소박하게 조성하려고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후대에 내려오면서 묘역이나 봉분, 정자각도 작아지고, 석물 숫자도 제한하고, 호위하는 석호(石虎)나 석양(石羊)도 실물에 가깝게 작아졌다. 왕릉 옆 비각엔 묻힌 자의 직위와 내력을 기록해 두었는데, 특이한 것은 비를 세운 때가 병자호란 수년 뒤였는데 명나라 마지막 왕인 숭정(崇禎) 연호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청이 쳐들어온 이듬해인 1937년 1월 추운 겨울날,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삼전도에서 ..

서오릉 1. 장희빈,숙종의 비,영조의 비가 묻힌 곳

서오릉 1 장희빈, 숙종의 비, 영조의 비가 묻힌 곳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사적 제198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2008.12.20) 서울 서쪽과 고양시가 만나는 곳에 서오릉이 있다. 햇볕 따스한 고을이라 고양(高陽)이라 이름을 얻은 것이 조선 태종 때이니 800년이 다 되어 온다. 창릉 익릉 명릉 경릉 홍릉 5기의 왕릉이 서울 서쪽에 있다 하여 서오릉이다. 조선 왕실 묘는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을 하는데, 능은 왕과 왕비, 원은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빈, 빈의 무덤이고, 묘는 제빈, 왕자, 공주, 제군 등 무덤을 일컫는다. 조선 27대 왕의 무덤은 왕과 왕비, 추존왕 무덤까지 44기인데,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서오릉이다. 세조 때 원자였던 큰아들..

고달사터 / 빈터 천년에도 당당한 위엄

고달사터 빈터 천년에도 당당한 위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2007.12.8) 도의 경지를 통달한다는 고달사(高達寺)는 사방 30리나 되는 사찰이었다. 터는 논밭으로 변하고 석물은 흩어졌지만 그 면모를 짐작할 수 있고, 향불이 꺼져 천년이 흘러도 뛰어난 문화재가 있어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크고 잘 생긴 석불 대좌에서 존재하지 않는 불상의 크기를 짐작하고, 울퉁불퉁 부도비의 귀부(龜趺)와 이수(이首)에서 늠름한 기상을 엿본다. 거북은 눈이 부리부리하고 땅을 박찰 듯 발끝이 억세며, 이무기는 하늘을 휘감듯 몸을 꿈틀거린다. 산 중턱엔 나라에서 제일 큰 부도가 앞을 막고 서 있는데 빈터를 천년이나 지키고 있는 당당한 위엄에 또 압도당한다. 고달사터 고달사터 발굴 현장 석불 대좌(보물 8호) 원종대사 부도..

봉업사터 / 고려태조 진영을 모셨던 절터

봉업사터 고려 태조 진영을 모셨던 절터 안성군 이죽면 죽산리 (2007.11.24) 중부고속도로 일죽 IC를 빠져나와 안성으로 가는 길 2.2㎞ 지점에 봉업사터가 있다. 주변이 논밭이고 축사여서 절터인 것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석물이 흩어져 있어서 절터인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창건과 폐사의 기록은 없지만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신 절이었다고 한다. 소박하면서도 검푸른 이끼 낀 당간지주가 앞에서 자리하고 있고, 석탑과 석불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넓은 가람의 배치를 일러주고 있다. 당간지주 뒷편 5층 석탑은 우묵하게 우뚝 솟아 위용이 있다. 조성 시기로 보아 고려 중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서 낮은 구릉을 돌아 오른편으로 넘어가면 소박한 삼층석탑이 있고 그 뒤로 세월의 풍파로 마모..

서궐 경희궁 / 조선 후기 이궁

경희궁(慶熙宮) 조선후기 이궁(離宮)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2007.6.8)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이궁(離宮)이었다. 1623년 광해군 때 지은 궁으로 서궐이라 불렀다.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영조 때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조 이후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임금이 머물렀는데 영조의 치세는 이곳에서 절반 이상을 보냈다. 당초 100여 동 건물들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 후 궁궐터를 헐고 학교를 만들면서 경희궁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에서 복원하여 2002년 개방하였다고 하나 경희궁 뒤뜰은 아직 동네축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적 정문엔 문화유적에 대한 예의도 없이 음료수회사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는 등 문화유적 복원에 더 많은 시..

덕수궁 / 경복궁이 불타 행궁으로 쓰던 곳

덕수궁 (德壽宮) 경복궁이 불타 행궁으로 쓰던 곳 서울 종로구 정동 (2007.6.8) 고종은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 신고를 하고 덕수궁으로 들어갔다. 덕수궁은 황궁이 되었다. 정문은 큰(大) 편안함(安)을 주던 문(門)인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크게(大) 하늘(漢)과 통하는 문(門)인 대한문으로 바꾸었다. 대안문에 불이 나자 궁궐에 갓 쓴 여인(安)들이 다녀 불이 났다고 1906년 고종 때 안(安) 자를 한(漢)으로 고쳐 대한문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정궁인 경복궁이 불타자 선조가 이곳을 임시 행궁으로 삼았다. 그 뒤 광해군이 즉위할 무렵 창덕궁이 완성되면서 궁궐의 기능도 잃고 이름도 경운궁(慶運宮)으로 바꾸었다. 지금 이름은 고종이 태황제로 물러나면서 고..

창덕궁 낙선재 / 궁궐 속 왕의 거처

창덕궁 낙선재 궁궐 속 왕의 거처 낙선재는 조선 헌종 때(1847년) 왕의 거처로 지은 곳이다. 왕이 휴식을 취하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고, 최근(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여사가 살았던 곳이다. 금천교 지나 진선문 지나 수장문 까지는 외관이 화려하나 낙선재부터는 단청이 없다. 사치스러움을 경계하여 그리 하였다 한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취운정에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고요함에 잠겼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 진선문 진선문 인정전 정문 인정문 빈청 낙선재 낙선재 석복헌 석복헌 출입문 수강재 수강재 출입문(포도무늬 벽) 수강재 출입문(매화무늬 벽) 취운정 취운정 뜰 취운정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