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고궁 능묘 산사 73

왕릉과 숲 3. 서울 정릉(貞陵.태조 계비 신덕왕후)

왕릉과 숲 3 서울 정릉(貞陵. 태조 계비 신덕왕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 87-16 정릉(貞陵) : 조선 태조 둘째 왕비 신덕(神德) 왕후 강(康)씨 (?-1396) 단릉 조선 왕릉은 모두 42기 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부에 6개 왕릉군(群) 14기[파주(4), 김포(1), 고양(8), 양주(1)]가 있고, 남부(화성)에 1개 왕릉 군 2기, 중부(서울)에 5개 왕릉 군 8기, 동부에 6개 왕릉 군 16기[구리(9), 남양주(4), 여주(2), 영월(1)], 북한지역인 개성에 2기가 있다. 그중 신덕왕후가 묻힌 정릉은 궁궐 경복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당초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다가 지금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에 옮겼어도 그러하다. 강비가 이성계를 처음 만난 날 물을 청하자 바가지에 버들..

왕릉과 숲 2. 서울 헌릉(獻陵.태종)과 인릉(仁陵.순조)

왕릉과 숲 2 서울 헌릉(獻陵. 태종)과 인릉(仁陵. 순조)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34 (내곡동 산 13-1) 헌릉(獻陵) : 조선 3대 태종(太宗. 이방원. 태조 5남. 1367-1422(55세), 재위 17년 10개월(1400-1418.)과 원경(元敬) 왕후 민(閔)씨(생존 1365-1420. 55세) 쌍릉 인릉(仁陵) : 조선 23대 순조(純祖. 정조 2남. 1790-1834(44세), 재위 34년 4개월(1800-1834)과 순원(純元)왕후 김(金)씨(김조순의 딸, 생존 1789-1857(68세) 합장릉 헌릉과 인릉은 서울 서초구 남쪽 대모산 자락에 있다. 조선 태종 내외와 순조 내외가 묻힌 곳이다. 한 왕은 악역을 자처한 족적이 뚜렷한 임금이고, 한 왕은 사회 혼란기에 자리를 영위하기 바쁜 임금..

왕릉과 숲 1. 화성 융릉(隆陵.사도세자)과 건릉(健陵.정조)

왕릉과 숲 1 화성 융릉(隆陵. 사도세자)과 건릉(健陵. 정조)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융릉(隆陵) : 추존 장조(莊祖. 사도세자. 영조 둘째 아들, 정조 생부. 1735~1762(27세))와 헌경(獻敬) 왕후 홍(洪)씨(혜경궁. 1735~1815(80세) 합장 능 건릉(健陵) : 조선 22대 정조(正祖. 사도세자 아들. 1752~1800(48세). 재위 24년 3개월(1776~1800)과 효의(孝懿) 왕후 김(金)씨(1753~1821. 68세) 합장 능 조선왕족의 무덤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의 사친(후궁, 종친)의 무덤이고, 그 외에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처럼 묘라고 한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무덤도 묘라 부른다...

동구릉 3 / 억새가 흔들릴 때

동구릉(東九陵) 3 조선왕릉 첫 터. 억새가 흔들릴 때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2012.9.29) 주차장-매표소-혜릉-경릉-원릉-휘릉-건원릉-목릉-헌릉-수릉-주차장 (약 6㎞. 2시간 반) 동구릉은 조선왕조가 왕릉 유택으로 처음 잡은 터이다. 이 터를 잡고 돌아오면서 유택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렸다 하여 넘어가던 고개를 망우리로 이름 지었다. 동구릉은 억새가 필 때와 눈 내리는 겨울이 좋다. 동구릉 안 자연학습장을 같이 돌아본다면 연초록 아름다운 봄도 좋다. 건원릉(태조릉)은 높이 자리 잡고 있어서 위세가 당당하다. 가을엔 고향 함흥 땅에서 가져온 억새가 봉분에서 수북이 자라기에 그것을 볼 수 있는 가을이 좋다. 장군 출신 임금의 위엄이 살아 있다. 숭릉과 목릉은 능 위쪽까지 올라가서 볼 수 있다. 동구릉..

선림원터 / 미천골 깊은 산골 절터

선림원터 미천골 깊은 산골 절터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2011.11.12) 홍천에서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미천골휴양림 가는 길이 있다. 선림원지로 들어가는 미천골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쪽에 있는 계곡인데, 옛날 선림원에 스님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을 때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물이 계곡으로 하얗게 흘러 미천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선림원은 804년 해인사를 세운 순응 법사가 세웠는데, 10세기 전반에 태풍과 대홍수로 무너진 후 복원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보물로 지정된 석탑, 부도, 부도비, 석등이 남아 있다. 축대 위에 올라서면 그 터는 그리 넓지는 않다. 선림원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절이 아니라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절이 아니었으니 당시에도 중생..

동구릉 2 / 조선왕릉터를 처음 자리 잡은 곳

동구릉(東九陵) 2 조선왕릉터를 처음 잡은 곳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번지 (2011.9.8) 조선 왕족은 신분에 따라 무덤 이름을 달리한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무덤이며, 다른 왕족은 일반 사람과 같이 묘(墓)라고 한다. 동구릉은 조선왕조가 왕릉 터를 처음 자리 잡은 곳으로 9개 릉 17위가 잠들고 있다. 이곳에 터를 잡은 후 한양으로 돌아가는 고개에서 이젠 근심을 다 잊었다고 하여 고개 이름을 망우(忘憂)라고 붙였다. 묏자리를 보는 것이야말로 큰 일이고 말고다. 능에 묻힌 왕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조선 역사 속 사건들을 하나씩 알아볼 수 있다. 요절한 후 추존된 왕, 천수를 누리며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한 왕비, 건강으로 일찍 승하한 왕, 당쟁과 전쟁의..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2)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2) 장락문(長樂門) 연경당 중앙에 들어가는 문이다. 같은 이름이 창덕궁 낙선재에도 붙어있다. 말 그대로 '무궁한 즐거움'이란 뜻이다. 신선의 궁궐을 장락궁이라 한다. 장락문 연경당(演慶堂) 장락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집이다. '경사가 이어지는 집'이란 뜻이다. 대갓집을 본 따 궁궐 안에 지은 99칸짜리 집으로,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여기서 쉬었다고 한다. 연경당 관람지(觀纜池)와 관람정(觀纜亭) 3개의 연못을 일제강점기에 이었다. 한때 반도지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관람지라 부른다. 부채꼴 모양의 정자가 관람정이다. 람(纜)은 닻줄의 뜻인데, 관람은 '배를 띄워 놓고 구경하다'는 의미이다. 관람지와 관람정 승재정(勝在亭) '뛰어난 경치(勝景)가 있는(在..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1)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1) 후원(後苑) 후원은 한자로, 뒤 후(後) 나라 동산 원(苑)이다. 궁궐의 뒷 정원이니 그리 풀어쓸 수 있다. 1903년부터 숨겨둔 정원이란 뜻인 비원(秘苑)을 썼으나 지금은 공식적인 이름이 후원이다. 부용정(芙蓉亭) 부용은 '연꽃'이란 의미인데, 부용지(芙蓉池) 연못 옆에 세운 정자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부용지 연못은 네모나고, 중간에 있는 조그만 섬은 원형인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사상에 의해 만들었다. 부용정 주합루(宙合樓) 부용지 앞 높은 곳에 서 있는 건물이 주합루이다. 주(宙)는 천자문 앞쪽에 나와서 눈에 익은 글씨인데,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간을 뜻한다. 따라서 주합루는 옛날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시간 적인 영역인 것이다. 주합루 ..

창덕궁 설경

창덕궁 설경 창덕궁(昌德宮) 2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2010.12.28) 창덕궁은 조선 왕실의 동궐로 경복궁이 불이 난 후 가장 오래 왕과 왕비가 머물렀던 공간이다. 그만큼 실록에 자주 등장하였다. 건물은 주변 지형에 거스르지 않게 자연스레 자리 잡았고, 자연을 깊숙이 끌어들인 후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었다. 경인년이 저물어 가는 섣달에,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에 아름다운 궁궐 모습을 구경하러 나섰다. 눈 내려 더 아름답다. ※ 교통편 :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관람시간 : 09:00~17:00 (겨울 기준. 입장은 마감 1시간 전). 매주 월요일은 쉼, 후원은 시간제. 해설사 안내를 받아 관람. 2시간 걸림 창덕궁 희정당(왕과 왕비의 업무 및 생활공간) 희정당 ..

운현궁에 눈 내린 날

운현궁에 눈 내린 날 운현궁 2 / 1864년(고종 1년) 건립, 1996년 중수.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 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 114-10 (2010.12.28)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저였다. 빈(嬪)이나 대군(大君)이나 군(君)은 사저도 궁(宮)이라 하였다. 운현궁 이름을 받은 것은 흥선대원군으로 교지를 내리면서부터이다. 원래 부근에 서운관(書雲觀)이 있었던 고개(峴)에 있었다고 하여 운현궁(雲峴宮)으로 이름 지었다. 뒤에 서운관은 관상감으로 바뀌고 관상감 관천대는 지금 현대 사옥 앞에 있다. 운현궁 건물은 원래 부근 2만여 평이었다가 지금은 2천 평 정도로 줄었는데,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4개 건물이 남아 있다. 노안당(老安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