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고궁 능묘 산사 76

왕릉과 숲 5. 남양주 광릉(光陵.세조)

왕릉과 숲 5 남양주 광릉(光陵. 세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광릉(光陵) : 세조(世祖. 세종 2남. 수양(首陽) 대군. 1417-1468(51세), 재위 13년 3개월(1455-1468)과 정희(貞熹) 왕후 윤(尹)씨(1418-1483.65세) 동원이강릉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 때 아들이다. 수양의 형이 문종(5대)이고 조카가 단종(6대)이다. 나이 어린 단종은 허수아비였고 권력은 신하가 쥐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무사를 데리고 김종서 부자를 죽이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시작하였다. 수양은 단종에게 달려가 거짓 이유를 대고 김종서를 처단했음을 알리고, 왕명을 빙자해서 왕궁에 영의정 등 관리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관리들 가족까지 죽이고 노비로 삼는 보복을 하였다. 왕조의 정상적..

왕릉과 숲 4. 여주 영릉(英陵.세종)과 영릉(寧陵.효종)

왕릉과 숲 4 여주 영릉(英陵. 세종)과 영릉(寧陵. 효종)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산 83-1(영릉로 269-1) 영릉(英陵) : 조선 4대 세종(世宗. 태종 3남. 충녕대군. 1397-1450(53세). 재위 31년 6개월(1418-1450))과 소헌(昭憲) 왕후 심(沈)씨(1395-1446. 51세) 합장릉 영릉(寧陵) : 조선 17대 효종(孝宗. 인조 2남. 봉림대군. 1619-1659(40세). 재위 10년(1649-1659))과 인선(仁宣)왕후 장(張)씨 (1618-1674. 56세) 동원상하릉 영릉 가는 길은 경강선이 생겨서 찾아가기가 나아졌으나 세종대왕릉역에서 다시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주시내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십여 리 여강길을 걸어서 영릉으로 갔다. 신륵사 앞 남한강 ..

왕릉과 숲 3. 서울 정릉(貞陵.태조 계비 신덕왕후)

왕릉과 숲 3 서울 정릉(貞陵. 태조 계비 신덕왕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 87-16 정릉(貞陵) : 조선 태조 둘째 왕비 신덕(神德) 왕후 강(康)씨 (?-1396) 단릉 조선 왕릉은 모두 42기 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부에 6개 왕릉군(群) 14기[파주(4), 김포(1), 고양(8), 양주(1)]가 있고, 남부(화성)에 1개 왕릉 군 2기, 중부(서울)에 5개 왕릉 군 8기, 동부에 6개 왕릉 군 16기[구리(9), 남양주(4), 여주(2), 영월(1)], 북한지역인 개성에 2기가 있다. 그중 신덕왕후가 묻힌 정릉은 궁궐 경복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당초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다가 지금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에 옮겼어도 그러하다. 강비가 이성계를 처음 만난 날 물을 청하자 바가지에 버들..

왕릉과 숲 2. 서울 헌릉(獻陵.태종)과 인릉(仁陵.순조)

왕릉과 숲 2 서울 헌릉(獻陵. 태종)과 인릉(仁陵. 순조)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34 (내곡동 산 13-1) 헌릉(獻陵) : 조선 3대 태종(太宗. 이방원. 태조 5남. 1367-1422(55세), 재위 17년 10개월(1400-1418.)과 원경(元敬) 왕후 민(閔)씨(생존 1365-1420. 55세) 쌍릉 인릉(仁陵) : 조선 23대 순조(純祖. 정조 2남. 1790-1834(44세), 재위 34년 4개월(1800-1834)과 순원(純元)왕후 김(金)씨(김조순의 딸, 생존 1789-1857(68세) 합장릉 헌릉과 인릉은 서울 서초구 남쪽 대모산 자락에 있다. 조선 태종 내외와 순조 내외가 묻힌 곳이다. 한 왕은 악역을 자처한 족적이 뚜렷한 임금이고, 한 왕은 사회 혼란기에 자리를 영위하기 바쁜 임금..

왕릉과 숲 1. 화성 융릉(隆陵.사도세자)과 건릉(健陵.정조)

왕릉과 숲 1 화성 융릉(隆陵. 사도세자)과 건릉(健陵. 정조)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융릉(隆陵) : 추존 장조(莊祖. 사도세자. 영조 둘째 아들, 정조 생부. 1735~1762(27세))와 헌경(獻敬) 왕후 홍(洪)씨(혜경궁. 1735~1815(80세) 합장 능 건릉(健陵) : 조선 22대 정조(正祖. 사도세자 아들. 1752~1800(48세). 재위 24년 3개월(1776~1800)과 효의(孝懿) 왕후 김(金)씨(1753~1821. 68세) 합장 능 조선왕족의 무덤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의 사친(후궁, 종친)의 무덤이고, 그 외에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처럼 묘라고 한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무덤도 묘라 부른다...

강화도 전등사 / 이야기와 역사를 보는 절

전등사(傳燈寺) 이야기와 역사를 보는 절 인천광역시 강화도 (2014.6.1)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 아도화상이 문을 연 오래된 절이다. 당초에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으나 고려 충렬왕 때 정화궁주가 불전에 옥으로 된 등잔을 올린 뒤 절 이름을 전등사(傳燈寺)로 바꾸었다. 궁주(宮主)는 고려 때 비빈과 왕녀에게 주던 봉작인데, 조선에서는 옹주로 불렀다. 이색이 지은 전등사 시(詩)에도 정화궁주의 이름이 나온다.  전등사는 정족산성 안에 있다. 원래 이 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성이라 삼랑성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정족산성이라 한다. 조선 숙종 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시작한 정족산사고가 그 안에 있었다. 사고는 1909년 실록을 서울로 옮겨 그 역할을 다 하였다. 정족산성은 병인..

동구릉 3 / 억새가 흔들릴 때

동구릉(東九陵) 3 조선왕릉 첫 터. 억새가 흔들릴 때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2012.9.29) 주차장-매표소-혜릉-경릉-원릉-휘릉-건원릉-목릉-헌릉-수릉-주차장 (약 6㎞. 2시간 반) 동구릉은 조선왕조가 왕릉 유택으로 처음 잡은 터이다. 이 터를 잡고 돌아오면서 유택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렸다 하여 넘어가던 고개를 망우리로 이름 지었다. 동구릉은 억새가 필 때와 눈 내리는 겨울이 좋다. 동구릉 안 자연학습장을 같이 돌아본다면 연초록 아름다운 봄도 좋다. 건원릉(태조릉)은 높이 자리 잡고 있어서 위세가 당당하다. 가을엔 고향 함흥 땅에서 가져온 억새가 봉분에서 수북이 자라기에 그것을 볼 수 있는 가을이 좋다. 장군 출신 임금의 위엄이 살아 있다. 숭릉과 목릉은 능 위쪽까지 올라가서 볼 수 있다. 동구릉..

선림원터 / 미천골 깊은 산골 절터

선림원터 미천골 깊은 산골 절터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2011.11.12) 홍천에서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미천골휴양림 가는 길이 있다. 선림원지로 들어가는 미천골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쪽에 있는 계곡인데, 옛날 선림원에 스님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을 때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물이 계곡으로 하얗게 흘러 미천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선림원은 804년 해인사를 세운 순응 법사가 세웠는데, 10세기 전반에 태풍과 대홍수로 무너진 후 복원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보물로 지정된 석탑, 부도, 부도비, 석등이 남아 있다. 축대 위에 올라서면 그 터는 그리 넓지는 않다. 선림원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절이 아니라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절이 아니었으니 당시에도 중생..

동구릉 2 / 조선왕릉터를 처음 자리 잡은 곳

동구릉(東九陵) 2 조선왕릉터를 처음 잡은 곳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번지 (2011.9.8) 조선 왕족은 신분에 따라 무덤 이름을 달리한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무덤이며, 다른 왕족은 일반 사람과 같이 묘(墓)라고 한다. 동구릉은 조선왕조가 왕릉 터를 처음 자리 잡은 곳으로 9개 릉 17위가 잠들고 있다. 이곳에 터를 잡은 후 한양으로 돌아가는 고개에서 이젠 근심을 다 잊었다고 하여 고개 이름을 망우(忘憂)라고 붙였다. 묏자리를 보는 것이야말로 큰 일이고 말고다. 능에 묻힌 왕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조선 역사 속 사건들을 하나씩 알아볼 수 있다. 요절한 후 추존된 왕, 천수를 누리며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한 왕비, 건강으로 일찍 승하한 왕, 당쟁과 전쟁의..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2)

창덕궁 후원 건물 이름의 뜻 (2) 장락문(長樂門) 연경당 중앙에 들어가는 문이다. 같은 이름이 창덕궁 낙선재에도 붙어있다. 말 그대로 '무궁한 즐거움'이란 뜻이다. 신선의 궁궐을 장락궁이라 한다. 장락문 연경당(演慶堂) 장락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집이다. '경사가 이어지는 집'이란 뜻이다. 대갓집을 본 따 궁궐 안에 지은 99칸짜리 집으로,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여기서 쉬었다고 한다. 연경당 관람지(觀纜池)와 관람정(觀纜亭) 3개의 연못을 일제강점기에 이었다. 한때 반도지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관람지라 부른다. 부채꼴 모양의 정자가 관람정이다. 람(纜)은 닻줄의 뜻인데, 관람은 '배를 띄워 놓고 구경하다'는 의미이다. 관람지와 관람정 승재정(勝在亭) '뛰어난 경치(勝景)가 있는(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