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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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에 대한 추억

하숙(下宿)에 대한 추억 하숙은 1920년대 초 처음 등장한 말이다. 도시가 생겨나고 유학생과 직장인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와서 살면서 생겼을 것이다. 새 학기초 대학교 담장에는 하숙생을 찾는 쪽지를 붙이고 하숙생을 찾고 있다. 요즈음은 합방인 경우 30~35만 원이 최저선인 듯하다. 유학생이 치러야 할 만만치 않은 돈이다. 대학가 하숙촌에도 대학생 보다 직장인이 늘어나고 대학생은 고시촌이나 원룸으로 밀려간다니 향토장학금을 줄여보려는 유학생의 선택일 것이다. 그만큼 하숙집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옛날 하숙집 낭만을 찾기도 어려워졌을 것이다. 내가 하숙할 때만 하여도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인심이 좋아서 친구들이 점심밥 먹으러 수시로 들락거리고, 생일 때에는 돼지갈비 잡채에 포도주까지 차려주었는데 그..

추사 김정희 입춘첩(立春帖)

추사 김정희 입춘첩(立春帖) 6세 어린 나이에 김정희가 그린 그림과 글씨를 보고 무릎을 쳤다는 박제가의 소문은 장안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그러나 김정희의 소문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이자 명신이었던 채제공(蔡濟恭)이었다. 일찍이 영조로부터 '나의 사심없는 신하이고 너(정조)의 충신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던 노 재상 채제공은 어느 날 추사의 집 앞을 지나다 대문 위에 걸린 글씨 한 점을 보게 되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대문 앞에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쓴 입춘첩(立春帖)이 내걸려 있었다. 평범한 넉자의 글씨였으나 그 글씨의 뛰어남을 본 채제공은 평소 김노경의 가문과 대대로 좋지 않게 지내는 사이였으면서도 특별히 집으로 찾아 들어갔다.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에게 그 글씨의 주인공이 ..

무의도 호룡곡산 / 섬과 바다를 보는 산행

호룡곡산, 국사봉 섬과 바다를 보는 산행 인천 무의도 (2007.3.1) 샘꾸미-호룡곡산-구름다리-국사봉-큰무리선착장(2시간 50분) 무의도로 배를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간 섬 남쪽 끝이 샘꾸미이다. 샘물이 꾸러미처럼 솟는다고 샘꾸미이다. 무의도는 무희가 춤추는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고, 말 탄 장수가 옷을 휘날리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였다고도 한다. 요즈음 무의도는 실미도와 하나개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소무의도까지 합하면 주민이 500명인데 섬이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실미도는 영화로 유명하고, 하나개해수욕장은 영화 천국의 계단과 드라마 열아홉순정 촬영지로 알려졌는데 축구선수 김남일이 이곳 출신이어 자랑거리가 더 늘어난 셈이다. 진작 재미있는 것은 섬을 도는 마을버스를 타고나서이다. 운전기사가 급한..

퇴계의 제자 선택법

퇴계의 제자 선택법 퇴계는 주역(周易) 공부를 고향 토계에서 가까운 청량산 청량정사에서 하였다. 주역을 100독이나 하였다고 한다. 퇴계가 청량정사에 머물던 무더운 어떤 여름날 서원에서 심부름 하는 사람이 올라왔다. 어떤 두 사람이 퇴계 제자가 되겠다며 찾아 왔다고 하였다. 퇴계가 그 사람들을 청량정사까지 오라고 해도 되겠지만 자신이 토계로 갈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고 서원으로 찾아갔다. 거리로 치면 삼십여리는 될 것이다. 두 사람은 합천에서 온 정인홍(내암 鄭仁弘)과 성주에서 온 정구(한강 鄭逑)였다. 퇴계가 올 때까지 정인홍은 땀을 흘리면서도 의관을 정제하고 곧곧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정구는 의관을 벗고 쉬고 있었다. 드디어 퇴계가 오고 인사를 나누었다. 퇴계는 정인홍에게는 힘에 겨우니 더 나은 스승을..

운길산 / 두물머리 풍광 감상터

운길산(雲吉山 610.2m) 두물머리 풍광 감상터 남양주시 와부읍 (2007.2.24) 상팔당-예봉산-철문봉-적갑산-새재고개-운길산-수종사-송촌리 (6시간 반)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는 언제 보아도 절경이다. 눈 켜켜이 쌓인 강가에 해 돋는 풍광은 일품이요 두물머리 물속으로 빠지는 일몰은 화려하다. 물안개 피면 수초(水草)도 같이 신비에 잠기고 갈대숲에서 달빛을 가슴으로 밤새 받을 수 있어 좋으며 구름바닷속에서 한잔 술을 마실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천연기념물 보호 예정 뽕나무 / 예봉산 검단산 / 예봉산에서 운길산 / 적갑산에서 수종사 찻집 삼정헌 수종사 종각 사이로 보는 두물머리 500년 은행나무 / 수종사 500년 은행나무 / 수종사 한음 이덕형 별서터(은거지) / 와부읍 송촌리

信義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꿔라

信義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꿔라 '信義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꿔라' 퇴계선생이 제자들에게 한 얘기이다. 퇴계 수제자에 유성룡이 있었다. 유성룡은 어릴 때 한양에서 살았는데 이웃에 이순신이 있었고 아주 막역하게 지냈다. 친구 간에 의리를 귀중하게 여기는 서로가 통했다고나 할까. 과거를 볼 때 무과를 보면 좋겠다고 권한 사람도 유성룡이었다. 임진왜란이 날 때 나라를 구할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을 때,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이 정5품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을 정 3품 전라좌수사로 몇 단계 수직상승 추천하였다. 반대파로 부터 난리가 났었고 그것을 기화로 유성룡은 4번이나 파직을 당했고 이순신도 평생 핍박을 받았다. 유성룡은 파직에도 굳굳했다. 여하튼 그 후로 나라를 풍전등화에서 구할수 있었다. 이순신이 전장에 나가..

우리 부부를 사람답게 만든 어른 입니다.

우리 부부를 사람답게 만든 어른입니다 퇴계 어머니가 태몽에서 공자가 대문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낳은 사람이 7남 1녀 중 막내인 퇴계입니다.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 이식이 세상을 떠났기에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지요. 퇴계는 어릴 때부터형의 잘못을 자기가 한 것으로 얘기하고 학문이 남 달랐기에 어머니는 퇴계가 학문의 길로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퇴계는 어머니의 뜻도 있고 하여 과거도 보지 않고 있다가 느지막이 과거를 보았는데, 임금이 주는 벼슬을 몇 번 반려 끝에 할 수 없이 청송부사를 맡겠다고 하였으나 청송부사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단양부사 자리를 대신 주어 7개월 동안 하였다고 합니다. 벼슬자리를 그만두고 퇴계는 고향인 토계에 들어와 글을 읽었습니다. 퇴계는 부인과 사별 하고 난..

한라산 겨울빛

한라산(漢拏山. 1950m) 2 한라산 겨울빛 제주 (2007.2.10-2.11) 첫날 : 어리목-만세동산-윗세오름-병풍바위-영실 (3시간 50분) 둘째 날 : 성판악-진달래대피소-백록담-용진각-개미등-관음사 (7시간 20분) 한라산은 살아 움직이는 산이다. 대지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사람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정수리는 아직도 한겨울 빛이지만 산이 바다에 발을 쑥 담그고 몸을 씻고 있다. 오름과 나무와 돌맹이 하나까지 신비롭고 수시로 산을 가두어 버리는 자연의 조화까지 산을 신비롭게 하고 살아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