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걸어서 보는 세상/실크로드 40

실크로드 여행기 30 / 화청지 -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있던 곳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30 화청지(華淸池. 화칭츠) -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있던 곳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2010.5.23) 시안역에서 내려서 서쪽으로 가면 시안 동쪽으로 가는 306번 초록색 버스가 있다. 승차 후 차장이 간단한 행선지에 대한 안내방송을 한다. 목적지 화청지는 시안에서 37㎞ 떨어진 곳으로 여산 기슭 온천 휴양지다. 진나라 때부터 '리산탕(麗山湯)'이 있었고, 당나라 때는 이곳에서 현종이 큰 별궁을 짓고 양귀비와 함께 즐겼다. 양귀비가 피서지로 썼다는 금사동(金沙洞) 안에도 온천이 있고, 입구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온이 일 년 내내 일정하고 욕탕 내용도 다양하다. 화청지에서 가장 눈 여겨 볼 온천이 두 군데이다. 현종이 목욕하..

실크로드 여행기 29 / 시안 - 역사의 도시 장안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9 시안 - 역사의 도시 장안이 변한 이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2010.5.23) 시안은 역사에 수 없이 등장하는 장안(長安)이 바뀐 이름이고, 산시성 성도이다. 오래된 문명 발생지이고 실크로드 출발지이다. 주, 진, 한, 수, 당 등 12개 왕조 수도였고,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古都)이기도 하다. 기차에서 빠져나오니 사람들이 무지 많다. 지도를 팔거나 관광 전단지를 든 사람들이 많다. 역 광장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인 것 같다. 산시성 인구가 3천만이 넘고 그 수도가 시안이니 많을 수밖에 없고 유명 관광지이다 보니 그러하겠다. 상상을 넘는 사람들이다. 실크로드의 출발지로 남은 명성보다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불과 39년..

실크로드 여행기 28 / 황하강가에서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8 황하강가에서 - 백탑산 공원과 황하 제1교 중국 깐수성 란조우 (2010.5.22) 병령사 석굴에서 나와 운전기사를 기다렸다. 우리가 병령사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낚시터에 가 있었다. 세상을 참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다. 점심은 운전기사가 추천하는 류쟈샤댐 아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차오미엔(볶음면)으로 해결하였다. 그 식당 특기가 니우로우라미엔(牛肉拉面)이라 하였다. 지위관역(가욕관역) 앞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고 낭패를 볼까 하여 한 개만 시켜봤더니 먹을만하였다.기사가 추천한 전문집이 확실히 다르다. 종업원이 우리한테 호기심을 가지기에 얘기를 붙였더니 몇 마디 우리말도 하고 드라마를 통해 아는 탤런트를 대며 친근하게 하였다. 오후 시간이 남기에 황하강가에 있는 백탑산 공원에서 시..

실크로드 여행기 27 / 병령사 석굴 - 석불과 어우러진 기암절벽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7 병령사(炳靈寺) 석굴 - 석불과 어우러진 기암절벽 중국 깐수성 란저우 (2010.5.22) 6시에 눈을 뜨니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달려가고 승무원이 커튼을 열었다. 산은 둥글고 밭은 넓다. 밭에는 농작물이 파릇파릇하고 토담집이 이어졌다. 흙집이 많은 편이다. 승무원이 부지런해지는 것을 보니 목적지에 다 온 모양이다. 기적을 부지런히 울린다. 우루무치에서 출발하여 20시간 이상을 달렸으니 요란하게 기적을 울릴 만도 하다. 란저우로 다가설수록 주변 환경이 너저분하다. 철길가 담에는 구호도 많고 글씨도 크다. 뭔가 하고 싶은 의욕이 있거나 모자라면 구호가 많은 법이다. 역에서 지하통로로 빠져나오는 승객으로 출구가 북적하다. 란저우 역 주변 여행사에서 11인승 버스를 흥정하였다. 85..

실크로드 여행기 26 / 가욕관장성 - 만리장성 서쪽 끝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6 지위관 장성 - 만리장성 서쪽 끝 중국 깐수성 자위관 (2010.5.21)    자위관(=가욕관)은 둔황에서 동쪽으로 300㎞ 떨어진 오아시스 도시이다. 고비사막 중간에 있어서 750여리를 고비사막 가운데를 달려야 한다. 꾸이주(瓜州)에서 챠오미엔( 볶음면) 종류로 두어 가지를 시켜 먹었다. 신장지역에 가까운 곳에서는 차가운 맥주를 찾기도 어렵다. 너무 급하게 술을 먹지 말라는 뜻인지 맥주잔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잔 반 정도 크기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고속도로 이동 차량이 적고 트럭이 대부분이다. 동쪽으로 갈수록 나무도 보이고 밭작물 재배하는 곳이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하였다. 마을을 중심으로 너른 벌이 조금씩 늘어났다. 집은 보이지도 않는데, 일하..

실크로드 여행기 25 / 아름다운 모래산 명사산과 작은 오아시스 월아천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5 아름다운 모래산 명사산과 작은 오아시스 월아천중국 깐수성 둔황 (2010.5.21)   아침 식사를 호텔에서 간편식으로 하고 시내에서 6㎞ 떨어진 아름다운 모래산 명사산(鳴沙山)으로 갔다. 개인 날 바람이 불면 모래가 움직이면서 소리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40㎞나 되는 긴 산이다. 사막이라면 영화에서나 본 사막을 기껏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한 영화를 이런 데서 찍는 모양이다. 실제로 며칠간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달렸던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고비사막은 이렇게 고운 모래산이나 모래밭이 아니었다.   산 입구에서 신발과 바지를 감싸는 덧버선을 빌려서 신었다. 걷는 동작은 굼뜨지만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안성맞춤이다. 햇볕이 비치는 한낮에는 더우므로 이른 아침에 왔..

실크로드 여행기 24 / 둔황 야시장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4 둔황 야시장 중국 깐수성 둔황 (2010.5.20) 여행 가이드가 추천한 중국음식점으로 갔더니 아침에 식사한 그 집 2층이다. 같은 집인 것 같다. 야채를 곁들인 풍성한 음식이라는 것이 추천 이유였다. 그리 독특한 것은 없고 큰 차이가 없었다. 음식점 술값이 비싸다고 가이드가 눈치 빠르게 어디 가서 이과두주 몇 병을 따로 들고 왔다. 중국집 주방을 보면 음식을 못 먹는다고 하는데, 화장실을 보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중국이 올림픽을 치르면서도 아직 개선을 못한 것 같다. 저녁을 끝낸 후, 배낭을 멘 채로 양관대주점 부근에 있는 야시장에 갔다. 신장 위그루 자치구에에 있던 시장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길거리에서 넓은 의자를 늘어놓고 시끌벅쩍하다. 손님을 들어오라고 부르는 가게가 ..

실크로드 여행기 23 / 양관 - 서역남로로 가는 관문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3 양관(陽關) - 서역남로로 가는 관문 중국 깐수성 둔황 (2010.5.20) 둔황 시내에서 40㎞를 달려가면 사막 한가운데서 옥문관과 양관이 갈라지는 길이 있다. 그 갈림길에서 옥문관은 서북쪽으로 50㎞, 양관은 서남쪽으로 30㎞를 가야 한다. 그러니 양관은 둔황 시내에서 계산하면 70㎞가 되는 셈이다. 이곳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길이 파이고 기사가 마음이 급한지 성질이 급한지 마구 달리는 바람에 천장에 머리를 몇 번 부딪혔다. 양관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멀리 물이 흐르는 것 같이 보였다. 나중에 가까이 가서 보니, 멀리 보이는 모래 언덕은 검어서 산처럼 보였고, 그 앞에 있는 넓은 사막은 하얀 빛이여서 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양관은 한(漢) 나라 때 서부..

실크로드 여행기 22 / 서역의 관문 옥문관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2 서역의 관문 옥문관(玉門關. 위먼관) 중국 깐수성 둔황 (2010.5.20) 막고굴 탐방 후 둔황 시내로 들어와서 둔황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둔황에서 출토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외래와 관계를 연구하는 자료로 관심을 끌고 있다. 둔황이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이기에 고지도로 본 실크로드가 정리에 보탬이 되었다. 점심은 며칠 만에 밥을 먹었다. 찰기가 없어 날아갈 듯한 밥이었다. 투루판에서도 그랬지만 운전기사가 자리 중간에 앉아 버려 우리 자리가 모자라고 어색하게 되었다. 평등사회라 하더니 자리 앉는 것도 그러한 것 같다. 둔황 시내에서 서북으로 90㎞ 떨어진 옥문관으로 출발하였다. 끝이 안 보이는 사막 길을 또 달렸다. 풀 한 포기가 없다. 오른쪽은 사막 모..

실크로드 여행기 21 / 세계 불교미술의 보고 막고굴

나의 실크로드 여행기 21 세계 불교미술의 보고 막고굴(幕高窟)중국 깐수성 둔황 (2010.5.20)    서역남북로 교차점인 둔황은 고비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지만, 고대 중국의 영토는 여기까지였다. 서역이 여기서 시작되고 천산남북로가 여기서 시작하였다. 그러니 모래밭인 옛 이름 사주(沙州)에서 크게 번창한다는 둔황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서역 지방의 중심이었던 그 옛날의 둔황은 서남쪽 3㎞ 사막 밑에 잠들고 있고, 현재 둔황은 18세기초 청나라 때 만들었다.  화려하였던 둔황이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다시 살린 것이 막고굴이다. 가히 세계 불교미술의 보고라 할만하다. 명사산 기슭 1600m 긴 언덕을 따라 바깥에서는 볼 수가 없게 장막을 치듯 5층 석굴을 만들었다.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