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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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길 1 / 북촌 한옥마을

북촌길 1 북촌 한옥마을 서울 종로구 (2007.5.1)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신분에 따라 사는 곳을 달리 하였다. 궁궐이 있던 경복궁 창덕궁 사이를 북촌이라 하는데, 종각을 경계로 북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부른다. 북촌은 사대부 양반들이 살았으니 양반가옥 동네다. 각 동네 유래를 보면, 잿골이 재동이요, 조선 정치가 김안국을 기려 안국동이며, 언론기관인 사간원이 있었다 하여 사간동, 의료기관인 제생원이 있어서 제생동 계생동 계동으로 변했다. 원골은 창경원 서쪽에 있다 하여 원서동으로 바뀌었고, 도교의 3위(태청 하청 옥청)를 모셨다 하여 삼청동이니 저 마다 역사를 지닌 이름이다. 양반가옥의 옛 영화도 뒤안길로 접어들었으니 조선말에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토지들이 작은 규모로 나눠져 지금과 같..

얼레지 / 보랏빛 유혹

얼레지 보랏빛 유혹 과명 : 백합과 속명 : 산우두(山芋頭), 엘레지, 가제무릇 분포 : 전국개화기 : 4월~6월 생육상 : 여러해살이풀 꽃말 : 바람난 여인 얼레지는 1000m 이상 고지에 자라는 봄꽃이다. 꽃술 부근에 W자를 아로새겨 피는 모습이 아름답다. 양지보다는 응달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봄이 막 시작되는 4월에 그 연약한 보랏빛 꽃을 피우며 누구를 유혹하였기에 꽃말이 바람난 여인인가. 봄바람에 뭇인간을 유혹하는 것은 모든 꽃이 다 그러할진대. 얼레지 / 연인산 (가평 2007.4.28) 얼레지 / 석병산 (강릉 2007.5.5) 얼레지 / 지리산 (2013.5.21)

정조 반차 행렬

정조 반차 행렬 재현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7 창덕궁 돈화문 앞 (2007.4.29) 정조반차(正祖班次)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회갑잔치를 기념하기 위해 왕궁에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지금의 수원)까지 8일간 행차를 이름이다. 당시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동원되었다 하나, 이번 축제에는 930여명 인원과 120여필 말이 참가하였다 한다. 만만찮은 거리요 만만찮은 행군이다. 행군 전에도 말이 말을 안듣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하였는데,그 옛날 한강 배다리를 건너는 일도 쉽지 않았을 터이다.

연인산 / 산상화원 들꽃능선

연인산(戀人山. 1068m) 산상화원 들꽃능선 가평군 북면(2007.4.28) 백둔리 장수폭포-소망능선-연인산-우정봉-국수당-마일리-현리버스터미널(6시간 반) 얼레지 양지꽃 노랑제비꽃 피나물 … 들꽃이 지천이다. 꽃을 밟으랴 발 딛기가 조심스럽다. 말잔등처럼 휘어진 방화선 능선으로 내려서면, 연초록빛 산능선에 들꽃이 끝도 없다. 천상화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산을 내려서도 이십여 리 길을 빠져나오는 오지산행. 아직도 들꽃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가는 길 : 청량리역 춘천행 열차 승차 - 가평역 - 북면행 버스를 타고 백둔리 하차

창덕궁 / 낙선재 - 궁궐 속 왕의 거처

창덕궁 낙선재 - 궁궐 속 왕의 거처  낙선재는 조선 헌종 때(1847년) 왕의 거처로 지은 곳이다. 왕이 휴식을 취하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고, 최근(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여사가 살았던 곳이다. 금천교 지나 진선문 지나 수장문 까지는 외관이 화려하나 낙선재부터는 단청이 없다.  사치스러움을 경계하여 그리 하였다 한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취운정에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고요함에 잠겼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    진선문    진선문    인정전 정문 인정문    빈청      낙선재    낙선재     석복헌     석복헌 출입문    수강재    수강재 출입문(포도무늬 벽)     수강재 출입문(매화무늬 벽)     취운정    취운정 담

운현궁 / 흥선대원군의 정치활동무대

운현궁(雲峴宮) 흥선대원군 정치활동 무대 서울 종로구 운니동 (2007.4.27) 운현궁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사저로, 이곳에서 고종이 태어나고 12살까지 살았던 곳이었다. 고종이 등극하자 대원군이 운현궁터를 확장하였으며, 해방 후 후손들이 들어가 살았으나 관리에 어려움이 생겨 서울시에서 서울定都 600년 기념사업으로 1991년 매입하여 보수하여 현재에 이른 건물이다. 대원군이 집권욕을 실현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선의 국운을 휘몰아치게 하였던 터이다. 운현(雲峴)이란 큰 뜻을 이룬 구름고개였으니, 품 속 뜻을 누군들 알 수 있었으랴. ※위치 :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부근

제비원 미륵불 / 세상 소원 다 들어주는 미소

세상 소원 다 들어주는 미소 제비원 미륵불 안동시 이천동 (2007.4.21) 연(燕)이를 사모한 법당 짓던 와공이 한순간 실수로 지붕에서 떨어져 죽어 날아간 혼이 제비요, 연(燕)이는 죽어 석불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기에 제비원미륵불은 연(燕)이 아씨를 닮아 세상 소원 다 들어주는 미소를 지녔다. 풍채가 나라 안에서 내로라하고 미소도 그러하다. 그러기에 안동의 얼굴로 삼았을 것이다. 산 넘어가던 길손이 쉬어가던 곳이 제비원(燕飛院)이요, 성주의 근원이 안동땅 제비원으로 민간신앙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제비원은 사람들이 머물다 갈 자리이다. ○ 제비원미륵불 / 안동 이천동 석불상(보물 115호)이 공식 명칭 교통 : 안동 버스터미널 앞에서 54번 시내버스(옹천 방면. 20분간격)를 타고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