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 215

아버지의 기다림

아버지의 기다림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초여름 마루에서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자전거에 두루말이를 매달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우리 더러 식사를 마저 하라며 뒷마루 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셨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니 모두 옷을 입고 마루로 나와 상을 준비하고 돗자리를 펴게하셨다. 모두 북쪽을 향해 서라며 그제야 상에 올린 두루말이를 폈다. 삼베였다. 오늘 너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어른이 계신 서울을 향해 절을 하라는 말씀을 채 마치지 못하고 당신이 먼저 목이 매었다. 어머니도 우시며 곡을 하시고, 우리도 눈물을 찔끔거리고 따라서 절을 하였다. 식구들이 저녁을 마치도록 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그 기다림이 아버지에게는 늘 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든 어떤 일..

택호(宅號)를 지어 불러라

택호(宅號)를 지어 불러라 어머니가 재작년 고향에 가셨다가 타성 사람들이 쉰이 넘은 당신 아들 이름을 마구 부르는데 언짢으셨는지, 설에 오시더니 전부 택호를 지어 알리고 그리 부르라고 부탁하라며 종방들에게 시켰다. 예로부터 자(字), 호(號), 택호(宅號)를 불러 어른 대접을 하였는데, 나이 먹은 아들이 대접 못받는 것이 못마땅 하셨던 것이었다. 관례(冠禮)를 치루면 본이름 외에 자(字)를 만들어 불렀는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르거나 동년배가 서로를 부를 때 쓴 이름인 것이다. 호(號)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니, 우리가 퇴계,다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무례가 되지 않는다. 문인,화가,학자들은 고상하다는 의미로 아호(雅號)라고 부르기도 한다. 족보에 보면 나는 자(字)가 경대(景大)..

호박에 대한 단상

호박에 대한 단상 호박 정약용 호박으로 죽을 쑤어 근근이 때웠는데 어린 호박 다 따먹고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호박 아직 안 맺으니 이 일을 어찌 하랴 詩로 보아 茶山도 호박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었던 모양이다. 넉넉치 못한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뒷마당 터밭과 이어진 산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거름 한번 넣고 호박씨를 군데군데 되는대로 심어놔도 강하고 모질어서 덤벙범벙 잘 자란다. 우리 식구에겐 호박에 대한 깊은 사연이 있다. 아버지의 월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때가 있어서 양식 걱정이 현실로 되었다. 그래서 호박범벅이 구황책으로 우리 집 밥상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밥상에 그리 오랜 기간을 올라온 것은 아니나 그 뒤 호박범벅을 싫어하는 동생이 생겼다. 산후 부기를 빼..

장 담그는 일

장 담그는 일  메주콩에서 아버지표 된장까지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 월별로 장 담글 때 해야 할 일을 노래하고 있다. 장 담그는 일이야 말로 인간의 요긴한 일이다. 어릴 때 메주를 쑤는 날엔 온 식구가 나서야 한다. 전날에 포대를 들고 산에 올라가 가랑잎 등 땔감을 준비하였다. 메주를 쑤는 새벽에는 우물에 나가  어머니가 콩을 씻는데 두레박으로 물을 길었다. 가마솥에 메주콩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콩 삶는 증기로 부엌이 자욱하여 얼굴도 잘 안보였다.   찐 콩은 무명으로 싼 주머니에 담아 메주틀에 넣어 밟는다.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이웃에서 볏짚을 구해 물에 축여두신다. 메주틀에서 메주가 나오면 그것을 옮겨 짚을 꼬아서 엮는다. 그렇게 동여 멘  메..

힘 '力' 서예 한 점

힘 '力' 서예 한 점 학창시절 비가 많이 오던 여름밤 설악산 양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난처한 처지에 있었던 스님 한 분을 거들어 드린 일이 있었다. 난처한 처지는 굳이 밝힐 일은 아니며 스님은 경황이 없었다. 그러고 1년 뒤. 늦은 봄 써클 친구들과 인사동으로 전시회 구경 갔다가 전국서예전에서 특선을 받은 그 스님이 쓴 서예 한 점을 만났다. 묵직한 글씨 '力'자는 화선지를 박차고 살아 움직이듯 힘이 넘쳤다. 같이 구경하였던 써클 친구가 그 글씨를 받고 싶어서 두 달치 하숙비나 되는 돈을 가지고 찾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친구는 스님으로부터 그 글씨를 받지 못하였다. 그 해 여름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서 그 스님을 만났다. 설악산에서 도와주어 고맙다며 바랑에서 꺼낸 붓글씨 한 점..

생명의 끈을 매는 사람

생명의 끈을 매는 사람 북한산 상장능선 구봉에서 (2008.2.24) 상장능선은 북한산 중 아직 개방하지 않은 산길 이다. 그 중 구봉은 그냥 오르긴 까탈스러워 쳐다보기만 하여도 아찔한 곳이어서 몇 차례 산행을 하였어도 그냥 지나치는 바윗길이었다. 오랜만에 상장능선 구봉을 오르다가 밧줄을 매는 사람을 만났다. 매어 놓은 밧줄이 낡아 그 역할을 다해가고 있었다. 무거운 밧줄을 가져와 새로 설치하러 온 것이다. 고마운 인사를 하고 바위를 다 올라서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멀리서 목소리가 겨우 들리는 위치로 다시 돌아와서 이름을 물었다. 좋은 일 하시는 분 함자나 얻자고 하였다. 나 보다 연배인 그 분 이름은 남정현이라 하였다. 좋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높은 산 오르듯 쉽지 않은 일이나 복을 주면 복을 받는 ..

쥐뿔의 노래

쥐뿔의 노래 작년말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집에서 자취하던 문학청년 권형 얘기를 하였고, 그 형의 시 '새댁'을 내 블로그에 올렸다. 벌써 30여년 전 얘기니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우린 그 시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과거의 형을 기억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 과거의 형이 내 블로그 '선비마을'에 나타났다. 그 형이 댓글로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조그만 알맹이만 있더라도 샅샅이 찾아내는 세상이 되었다. 소백산 자락 고등학교에서 교직을 업으로 삼고 계시고, 아직도 좋아하는 시의 끈을 잡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은 당신 별명인 '쥐뿔'형님께서 시집 '쥐뿔의 노래' 를 보내주셨다. 세월이 지나도 그 시를 읽으면 숨쉬는 공간이 생긴다. 문풍지에 바람결 느끼듯 신선하고 생활의 숨결이 묻어난다. ..

월드컵축구 / 희망을 쏜다

한국축구 희망을 쏜다 월드컵축구 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1차전) 2008.2.6.20시 서울월드컵경기장 태극전사 프리미어리거 3인방 박지성,이영표,설기현 그들이 한국 축구 희망을 쏘겠다는 말대로 활기가 넘쳤고,'어느 자리에 서든 내가 해야할 몫을 100% 다 해낼 것'이란 박지성선수의 각오는 늘 든든하다. 붉은악마들 응원은 영하의 겨울 밤을 열기로 채웠고, 경기는 관중들의 기대 만큼 활력이 넘쳤다. 붉은악마 응원가 대로 "그댄 나의 챔피언 너와 나의 챔피언 우리 함께 외치는 승리하리라" *투르크메니스탄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나라로 FIFA 랭킹 128위로 우리나라(41위) 보다 한 수 아래 팀이지만,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가 진(2-3)..

자취생 權兄

자취생 權兄 내가 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자취생이 있었다. 교대 다니는 학생들이 자취생으로 들어왔다.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졸업하여 나가고 또 들어오곤 하였다. 동짓날이 되니 우리 집에서 자취하던 분이 떠 올랐다. 주위에서 권형으로 불렀고 스스로도 그렇게 불렀다. 그 당시에 나 보다 몇 년 연배 였으니 지금은 고참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에서 그 날 배운 음악이나 무용 등을 직접 복습하느라 우리 집 마당은 늘 구경거리가 많았다. 우리는 툇마루에 앉아 웃으면서 어른같은 학생들이 마당을 겅충겅충 뛰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하는 모습에 같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그 형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자기 주장을 하였는데,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에게 양치질 할 때 치솔을 못쓰게 하겠다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