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 426

지리산 실상사 / 신라 구산 중 제일 먼저 문을 연 절집

지리산 실상사 신라 구산 중 제일 먼저 문을 연 절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2007.6.2)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하고 꽃밥에 앉은자리가 실상사라 한다. 신라 구산 중 제일 먼저 문을 연 절로 국보와 보물이 가득한 절집이다. 해탈교를 건너기 전후에 돌장승이 있다. 우리부리한 눈과 주먹만 한 코가 한껏 사납게 보인다. 해탈을 하는데 방해되는 잡귀들을 몰아내기 위해 서 있을 것이다.  우리 찾아간 때에 보광전은 수리 중이었다. 요즈음은 어디 가나 수리하고 있는 절집이 많다. 보광전 좌우에는 몸돌과 지붕돌이 아름다운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이 탑이 석가탑과 다보탑 만들 때 모델이 되었던 탑이라 한다. 멀리 지리산이 탑 끄트머리에 걸쳐있듯 보인다. 보광전 바로 앞에..

청계천 오간수교 / 도성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

도성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 청계천 오간수교(五間水橋) (2007.5.11) 오간수문(五間水門)은 흥인지문에서 광희동 쪽으로 가다가 청계천6가에 있었던 수문(水門) 이었다. 5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오간수문이다. 한양 축조 때 만든 것인데 도성 안에 있는 물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었다고 ..

성균관 / 한국 유학의 산실

한국 유학의 산실 성균관(成均館) 서울 종로구 명륜동 (2007.5.10) 성균(成均)은 '주례(周禮)'에 나오는 '成人材均風俗'(인재를 키우고 풍속을 바르게 한다)에서 나온 말이다. 1년에 2번 봄가을에 지내는 석존 제례가 있는데, 마치 지나던 길이라 봄 제례 전날 미리 찾아보았다. 묘는 무덤 묘(墓)가 있고, 사당 묘(廟)가 있는데, 국가에서 인정한 사당 묘는 조선 임금과 왕비를 모신 종묘(宗廟), 관우를 모신 동묘(東廟), 선비들의 사당인 문묘(文廟) 세 곳이 있다. 성균관은 한국 유학의 산실이요, 문묘는 성균관 문묘를 이르는데, 공자, 사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 십철,18현 총 39분 명현 위패를 모신 곳이다. 현판은 대성전(大成展)으로 우리나라에 대성전이 여러 곳 있기에 성균관 대성전으..

정조 반차 행렬

정조 반차 행렬 재현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7 창덕궁 돈화문 앞 (2007.4.29) 정조반차(正祖班次)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회갑잔치를 기념하기 위해 왕궁에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지금의 수원)까지 8일간 행차를 이름이다. 당시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동원되었다 하나, 이번 축제에는 930여명 인원과 120여필 말이 참가하였다 한다. 만만찮은 거리요 만만찮은 행군이다. 행군 전에도 말이 말을 안듣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하였는데,그 옛날 한강 배다리를 건너는 일도 쉽지 않았을 터이다.

창덕궁 / 낙선재 - 궁궐 속 왕의 거처

창덕궁 낙선재 - 궁궐 속 왕의 거처  낙선재는 조선 헌종 때(1847년) 왕의 거처로 지은 곳이다. 왕이 휴식을 취하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고, 최근(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여사가 살았던 곳이다. 금천교 지나 진선문 지나 수장문 까지는 외관이 화려하나 낙선재부터는 단청이 없다.  사치스러움을 경계하여 그리 하였다 한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취운정에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고요함에 잠겼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    진선문    진선문    인정전 정문 인정문    빈청      낙선재    낙선재     석복헌     석복헌 출입문    수강재    수강재 출입문(포도무늬 벽)     수강재 출입문(매화무늬 벽)     취운정    취운정 담

운현궁 / 흥선대원군의 정치활동무대

운현궁(雲峴宮) 흥선대원군 정치활동 무대 서울 종로구 운니동 (2007.4.27) 운현궁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사저로, 이곳에서 고종이 태어나고 12살까지 살았던 곳이었다. 고종이 등극하자 대원군이 운현궁터를 확장하였으며, 해방 후 후손들이 들어가 살았으나 관리에 어려움이 생겨 서울시에서 서울定都 600년 기념사업으로 1991년 매입하여 보수하여 현재에 이른 건물이다. 대원군이 집권욕을 실현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선의 국운을 휘몰아치게 하였던 터이다. 운현(雲峴)이란 큰 뜻을 이룬 구름고개였으니, 품 속 뜻을 누군들 알 수 있었으랴. ※위치 :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