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섬으로 간다/섬 섬 섬 114

장봉도 섬 산행

장봉도(長峰島) 섬 산행 이름도 길고 봉우리도 많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 4리-해안가-윤옥골-가막머리-봉화대-장봉 4리-국사봉(151m)-말문고개-팔각정-옹암선착장 장봉도는 이름대로 길고(長) 봉우리(峰)가 많다. 썰물이 빠지면 금방이라도 걸어서 닿을 듯한 거리에 강화도가 있다. 고려 때 몽고 침입으로 본도에서 이곳으로 피난 와서 살기 시작했다는 곳인데, 강화도호부 소속이었으니 본도는 강화도를 의미한다. 매시간 인천 영종도 삼목선착장을 떠나 이곳 옹암선착장에 배가 닿으면 한 무리 사람들이 섬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논 가운데에 백로가 제 얼굴을 비춰 보는지 미동도 않는데, 바다 바깥에선 괭이갈매기가 이따끔 울어댄다. 썰물이 빠져 나간 갯가는 싱싱하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굴을 까서 짭짜름한 바다 냄..

고려산 / 진달래 꽃가지에 바람만 다녀가고

고려산(高麗山 436m) 진달래 꽃가지에 바람만 다녀가고 강화군 (2011.4.10. 흐림→맑음→ 오후 늦게 비. 2.5~12.8℃) 청련사 입구-청련사-고려산-진달래 군락지-고인돌군-고인돌군-적석사 갈림길-낙조봉-미꾸지고개 (8.7㎞. 3시간) 고려산은 애당초 오련산(五蓮山)이라 하였다. 고구려 장수왕 때 인도 고승 천축조사가 오색 연꽃을 뿌려 절터를 잡았다 하여, 산이름도 절이름도 모두 그에 따라 지었다. 몽고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39년 항몽 기간 중 강화는 국운을 짊어진 곳이었지만, 그 이전에도 근세에도 강화는 수도를 지킨 터이고 고난의 땅이었다. 그 땅에 우뚝 솟아 지키고 있는 산이 마리산,혈구산,정족산,낙가산,해명산,고려산이다. 고려산..

혈구산 / 사방이 터져 둘러보는 맛이 좋은 산

혈구산(穴口山 466m) 사방이 터져 둘러보는 맛이 좋은 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2011.3.13. 맑음. 4~13.2℃) 외포 1리 외주정류소-외포정미소-임도-퇴모산(338)-혈구산-고비고개 (약 9㎞. 4시간) 지기(地氣)가 모인 곳을 혈구(穴口)라 하는데, 혈구산은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사람 입에 해당하는 혈구는, 초입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내려보는 내가저수지가 그런 자리일 것이다. 산은 높아야만 좋은 산이 아니라 가슴 속에 느끼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혈구산에 올라 보면 주위가 모두 터져 호호탕탕 시원하다. 온 산이 빨려들 듯 모여들고 흩어진다. 산줄기가 살아 숨쉬 듯 호쾌하다. 백두산에서 499㎞, 한라산에서 486㎞. 백두산과 한라산 중간에 자리 잡은 지리적인 위치도 의미가 있고, 넓..

해명산 낙가산 / 아름다운 갯벌을 보며 걷는 석모도 산길

해명산(327) 낙가산(235) 아름다운 갯벌을 보며 걷는 석모도 산길 인천 강화군 삼산면 (2010.12.12. 맑음.-8.7~1℃) 전득이고개-해명산-새가리고개-낙가산-보문사주차장 (4시간) 강화도 외포리선착장에서 버스에서 배로 바꿔 타고 석모도로 가는 바다를 건넜다. 석모도 산길은 우두머리 갈매기가 끼욱끼욱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전득이고개에서 시작한다. 산으로 오를수록 바다는 넓어지고 이제 막 썰물이 나가는지 갯벌도 점점 넓어진다. 히얀도 하지. 사람들은 어떻게 바닷물을 밀고 당기는 것이 달님이 하는 것임을 알았을까. 방죽 안은 논이고, 그 바깥은 갯벌이라 멀리 보아도 물 나간 흔적이 걸쭉하다. 갯벌에 사는 사람들은 물때를 알아 이곳 갯벌에서 먹고 살아갈 것을 찾는다. 강화도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무의도 호룡곡산 / 무희가 춤추는 아름다운 섬에 백설도 춤춘다

호룡곡산(虎龍谷山 244m), 국사봉(國史峰 230m) 무희가 춤추는 아름다운 섬에 백설도 춤춘다 인천 무의도 (2009.12.27) 흐린 후 눈. 기온 -8.8℃~-4.9℃. 풍속 2.1m. 적설량 2.7㎝ 샘꾸미-마당바위-호룡곡산-부처바위-환상의 길-하나개해수욕장-구름다리-국사봉-실미도유원지 입구-당산-큰무리선착장 (4시간 50분) 샘이 꾸러미처럼 솟는다는 무의도 남쪽 끝 샘꾸미에 도착하였다. 무의도와 소무의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었고, 무의도와 잠진도 사이에도 다리를 놓는다는데 환상적인 섬 산행 맛도 줄어들게 되었다. 10년 전 마이크를 잡고 무의도 소개를 재미나게 하던 마을버스 기사는 어디 가고. 운전대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감은 녹슨 차와 표정 없는 버스기사가 대신하였다. 축구선수 김남일이 이곳..

백령도 6. 연화리 낙조

백령도 6. 연화리 낙조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2008.12.2) 파랑주의보 발효로 배가 뜨지 못하여 백령도에서 하루 더 묵게 되었다. 백령도에서 안개 끼고 바람 부는 날이면 관광객은 꼼짝 못 하고 발이 묶이게 된다. 안개 끼는 날이면 군함도 움직이지 못한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며칠 배가 뜨지 못하여 나가는 배표를 구하느라 사람들이 동분서주 하였다. 다행히 배표를 미리 구해 놓고 연화리로 낙조를 보러 갔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진성여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가던 왕자가 풍랑을 만나 백령도에서 묵으면서 바다를 잠재워 달라고 연지에서 제사 지낸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예부터 백령도 부근엔 풍랑이 잦았던 모양이다. 백령도에는 연꽃과 관련되는 이름이 많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져 환생하였다는..

백령도 5. 두무진 / 서해 해금강

백령도 5. 두무진(頭武津) 서해 해금강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2008.11.30-12.2) 두무진은 백령도 서북쪽에 있는 포구로 백령도 제1 명승지요, 서해의 해금강이다. 두무진이란 이름은 뾰족한 바위가 많아 생긴 모습이 머리털과 같다고 하여 맨 처음엔 두모진(頭毛鎭)이라 하였다가, 장군머리와 같다 하여 두무진(頭武津)으로 바꾸었다. 러일전쟁 때는 일본이 병참기지로 썼는데, 지금은 서해 최북단에서 정중동의 의미 있는 포구로 남아있다. 사암과 규암으로 된 바위층은 층리가 이루어져 바다가 물결치듯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다. 수억 년 동안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선대바위 신선대 형제바위가 철석이는 파도소릴 들으며 서 있다. 두무진 바위틈에 서면 세상에 지은 때를 철석철석 바다에 풀어낼 수가 있다. ..

백령도 4. 북포리 남포리 포구

백령도 4. 북포리 남포리 포구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2008.12.1-12.2) 백령도에서 제일 높은 곳은 해발 184m이다. 그래서 따로 산을 탄다는 표현을 하긴 좀 뭣하다. 하지만 섬 곳곳이 아담한 포구가 있어 주민들이 먹고 살 어업자원을 충족할 수가 있다. 물론 전체 주민 중 농가가 34%이고 어가가 15%여서 섬이라는 지형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곳 소득은 높은 편이라 한다. 농업을 하더라도 농휴기에 미역을 따거나 굴을 딸 수 있는데, 물이 빠질 때 몇 시간 굴을 딴다면 하루 6만 원 정도 벌이는 된다고 한다. 관광으로 벌어먹고 사는 인구가 많고 더불어 농어민 소득도 높아지는 셈이다. 백령도엔 황해도가 옛 생활근거지여서 그러한지 면을 파는 음식점..

백령도 3. 사곶해변과 콩돌해안

백령도 3. 사곶해변과 콩돌해안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2008.12.1-12.2) 용기포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있는 해변이 사곶해변이다. 모래벌이 돌출한 해변이라 사곶이다. 천연기념물(391호)로 지정된 사곶해변은 모래벌 3㎞가 미세한 석영으로 되어 있는 단단한 곳이라 자동차가 지나가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6.25 전쟁 때는 천연비행장으로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천연비행장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더불어 세계에서 두 곳 밖에 없는 아름다운 곳인데 최근 담수호를 막는 바람에 오염이 되기 시작하였다는 주민들의 얘기다. 물을 먹은 모래는 자동차가 거뜬히 지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바퀴가 빠지게 되는데, 우스개 얘기로 한밤중 주민 눈을 피해 사곶해변에서 자동차로 데이트하던 선남선녀가 마른 ..

백령도 2. 용기포와 용기원산

백령도 2. 용기포와 용기원산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2008.12.2-12.3) 백령도 유래 전설에 의하면, 황해도 어느 마을에 글 공부하는 선비와 사또의 딸이 사랑을 하였다. 선비를 못마땅히 여긴 사또가 딸을 멀리 섬으로 보내버렸다. 수소문하던 선비 앞에 하얀 학이 나타나 딸이 있는 곳을 일러주었다는데, 이 섬에 하얀 학이 인도하였다 하여 백학도(白鶴島)라 하였다가, 지금은 흰 백(白) 날개 령(翎)을 써서 백령도라 부른다는 얘기이다. 또 한편으로는 원래의 이름은 따오기(鵠)가 날개를 편 형상이라 곡도(鵠島)라 하였는데 백령도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실제 지도를 펴 놓고 보면 따오기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과 같다. 백령도에 여객선이 처음 닿는 곳이 용기포항이다. 옛날에 용기포에 살던 용과 바다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