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37

백로가 지나면 기러기 날아와 가을을 전한다

말속에 자연 27 백로가 지나면 기러기 날아와 가을을 전한다   백로(白露)는 양력 9.8경으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서 풀잎에 이슬이 보일 정도로 기온이 차가워진다. 새벽 산길을 걷다가 보면 풀잎에 송골송골 맺힌 이슬이 보인다. 대체로 백로를 깃점으로 가을이 시작된다. 백로는 벌초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추수를 앞두고 숨을 고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백로에서 추분 사이에 기러기가 날아오며, 제비는 남쪽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더위에 혼쭐이 난 정신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새들은 때가 되면 저 왔던 곳으로 움직인다. 기러기는 이동할 때 대오가 정연하다. 경험이 있는 기러기가 앞장서서 V자 대열로 날아간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다. 기러기들은 서로 힘을 합하고, 신의가 있으며, 방향감각이..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말속에 자연 26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處暑)가 지났다. 처서는 양력 8.23 경으로 더위(暑)가 차츰 물러나기(處) 시작하는 시기다. 백로(白露)도 지나 여름이 어느 정도 끝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온이 들기 시작한다. 아침에 가까운 산을 한 바퀴 돌면서도 확실히 달려드는 숲모기가 줄어들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있다. 더위가 끝나고 모기 활동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모기는 1억 7천만 년 전 공룡이 번성하던 쥐라기 때 처음 등장했다. 암컷 모기는 산란기가 되면 단백질을 보충하러 사람에게 달려든다. 처음에는 동물의 피가 주식이었는데 사람 피가 낫다는 것을 알았다. 모기는 살갗 얇은 곳을 골라 침을 바르고 그곳에 주둥이를 대면 진통도 없이 피가 ..

부평초 인생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말속에 자연 25 부평초 인생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부평초(浮萍草) 같은 인생'은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인생을 말한다. 부평초가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떠다니듯 정처 없이 떠다니는 인생을 부평초라 한다. 부평초 인생이란 허무한 존재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얽매임 없이 다니는 자유로운 삶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생은 평초(苹草)란 말도 하는데, 평(萍)이 부평초 평이다. 평초에 부(浮)를 붙였다. 부평초는 우리말로 개구리밥이다. 개구리밥은 개구리가 많이 사는 논이나 못에서 자라고 개구리의 먹이로 될만한 크기라서 붙인 이름이다. 뿌리는 있으되 흙에 내리지 않아 자유로운 듯 보인다. 개구리밥에 비해 개체가 작은 좀개구리밥도 있다. 개구리밥은 뿌리가 여러 개이고 잎 아..

호박꽃도 꽃이냐 / 이 세상 제일 큰 열매를 주었습니다

말속에 자연 24 호박꽃도 꽃이냐이 세상 제일 큰 열매를 주었습니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그런다. 너무나 흔한 꽃이라 그렇게 조롱하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 호박꽃을 실제로 보면 노랗고 탐스럽다. 꽃살이 통통하고 푸근하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꿀 내가 난다. 어릴 때 아버지와 인분을 구덩이에 채운 후 흙을 덮고 호박씨를 심었다. 호박은 몰라보게 잘 자랐다. 덩굴에 아까시나무 막대기를 대기도 하고 가물 때는 우물에 가서 물을 퍼 날랐다. 잎 겨드랑이에서 나온 꽃대에 노란색 꽃이 피면,  벌은 호박꽃에 들어가 꽃가루를 이곳저곳 묻히고 나온다. 호박꽃은 벌이 양식을 구할 가장 넓은 꽃밭일 것이다.   호박은 남미 원산인데 임진왜란 이후 고추, 담배와 같이 들어왔다. 호박은 북쪽 오랑캐(胡) 지역으..

나무를 낳는 새 / 나무는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하다

말속에 자연 23 나무를 낳는 새나무는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하다   시인 유하가 지은 시(詩) 중에 〈나무를 낳는 새〉가 있다. '찌르라기 한 마리 날아와 / 나무에게 키스를 했을 때 / 나무는 새의 입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  바람이,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 싹을 틔워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 나무는 그렇듯 /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 새떼가 날아갑니다 /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시의 전문이다. 식물이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열매를 맺은 후에는 여러 방법으로  어미로부터 씨앗을 멀리 보내야 한다. ..

연잎은 자기가 감당할 만큼 가진다

말속에 자연 22 연잎은 자기가 감당할 만큼 가진다   연꽃에 비가 내리면 물방울이 잎을 적시지 않고 흘러내린다. 연잎이 물에 젖지 않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기 정화현상을 연잎효과(lotus effect)라 한다. 독일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트로트가 연잎 표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 연잎은 작은 돌기로 덮여 있고, 돌기는 작은 솜털로 되어 있어서 물을 밀어내어 연잎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밝혔다. 연이나 토란을 가꿔 본 사람이면 다 아는 것인데 과학을 입힌 것이다. 연잎은 물을 잘 쏟아내어 먼지는 물론 병원균이 묻지 않고 광합성도 잘된다. 토란, 나비, 잠자리도 연잎효과로 자정능력이 있다. 이런 연잎효과를 이용하여 김서림방지 마이크로칩, 발수유리, 태양전지판, 자기 세정 기능을 가진 직물 제조, 건물..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말속에 자연 21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송나라 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하였듯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속담에서도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름다움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꽃같이 살자'라는 말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자'는 말이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 연꽃이 있었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전에 이미 연꽃이 있었다. 연꽃은 여러해살이 식물로 아랫부분에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굵은 땅속줄기가 발달한다. 연근은 뿌리라기보다는 줄기에 해당하여 이런 것을 뿌리줄기라 한다. 연근에 구멍이 뚫린 것은 진흙 속에서 숨쉬기 위한 공기저장조직이다. 연꽃의 열매가 연밥이다...

기다리면 꽃 피는 소리도 들린다

말속에 자연 20 기다리면 꽃 피는 소리도 들린다   연꽃은 여름에 피는 꽃이다. 연꽃은 송나라 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로 더 잘 알려졌다. 애련설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면서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흔들리면서도 요사스럽지 않다'라고 했다. 주돈이는 성리학의 개조(開祖)로 태극이나 이기(理氣)란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의 학문은 정호·정이를 거쳐 주희에 이르러 주자학으로 정리되었다. 이 주자학이 조선의 성리학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 주돈이가 애련설을 얘기했으니 연꽃을 군자의 꽃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애련설에서 연꽃은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으며,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두고는 감상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연꽃은 칠팔월 해가 뜨기 전에 핀다. 그래서 선인들은 새벽에..

어정칠월 동동팔월 / 계절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말속에 자연 19 어정칠월 동동팔월계절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어정칠월 동동팔월'은 절후와 관련한 우리말 속담이다. 농가에서 칠월은 하는 일 없이 어정거리다가 가고, 8월은 바빠서 동동거린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계절이 바뀌면 이런 말이 생각난다. 동동팔월은 '건들팔월'이라고도 하는데, 정신없이 일하다가 보면 건들바람처럼 지나간다는 뜻이다. 건들바람은 초가을에 불어오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이다. 계절은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간다.  세월의 흐름을 재기 위해서 음력을 썼다면, 양력으로 쓰는 24 절기는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있다. 24 절기는 날씨와 계절을 알고 농사를 짓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상순 중간과 하순 중간에 하루씩 있다.  7월은 소서(小暑. 7...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말속에 자연 18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이끼도 숲을 풍성하게 한다  이끼는 깊은 산속 습한 곳에서 자란다. 산속 나무나 바위에서 이끼를 볼 수 있다. 이끼 낀 길도 있고  이끼 낀 비석도 있고  산소도 있다. 그래서 시(詩)에서 표현하는 이끼는 태곳적 적막이나 세월의 무상함을 나타낸다. 오래된 숲의 틈을 이끼는 놓치지 않는다. 이끼 낀 돌은 유구하고 적막하다. 조지훈의 글 '석문'에서 석문난간 열 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가 그렇고, 이육사의 글 '자야곡(子夜曲)'에서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가 그것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란 속담이 있다. 부지런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침체되지 않고 발전한다는 말이다. 이때 이끼는 정체된 상태이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