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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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 '길위에서의 생각' 외

류시화의 시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새와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어떤 나뭇..

조지훈 시 '산중문답'

산중문답 조지훈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쌉살개오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난는 맛을 자네 태고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네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매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

김소월 시 '진달래꽃'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1902∼1935 본명 정식(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오산학교과 배재고보를 거쳐 동경상대 중퇴. 오산학교 시절 스승인 김억에게 지도를 받음. 시집으로 『진달래꽃』이 있음.

도연명의 '귀거래사'

歸去來辭 도연명       돌아가야지논 밭이 묵히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지마음은 스스로 몸의 부림 받았거니혼자 근심에 슬퍼하고 있겠는가지난 날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앞으로는 후회 하는 일 없으리라길을 잘못 들었으나 아주 멀지는 않다지난 시간은 후회지만 이제부터 바르리고운 물결 흔들흔들 배를 드놓이고바람은 가벼이 불어 옷자락을 날리네지나는 이에게 앞길 물어 가야 하니희미한 새벽빛에 절로 한숨이 나네어느 덧 저 멀리 집이 바라다 보이니기쁜 마음에 달리듯이 집으로 간다.사내아이 종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어린 아들 문 앞에 기다려 서 있네세 갈래 오솔길에 잡초 우거졌어도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항아리 가득히 술이 나를 반기네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뜰의 나무를 지..

김영랑 시 '수풀 아래 작은 샘'

수풀 아래 작은 샘 김영랑 수풀 아래 작은 샘 언제나 흰구름 떠가는 높은 하늘만 내어다보는 수풀 속의 작은 샘 넓은 하늘의 수만 별을 그대로 총총 가슴에 박은 작은 샘 두레박을 쏟아져 동이 가를 깨지는 찬란한 떼별의 흩는 소리 얼켜져 잠긴 구름 손결이 온 별나라 휘흔들어버리어도 맑은 샘 해도 저물녘 그대 종종걸음 훤듯 다녀갈 뿐 샘은 외로워도 그 밤 또 그대 날과 샘과 셋이 도른도른 무슨 그리 향그런 이야기 날을 세웠나 샘은 애끈한 젊은 꿈 이제도 그저 지녔으리 이 밤 내 혼자 나려가볼꺼나 나려가볼꺼나 (1903-1950) 본명은 윤식(允植) 전남 강진 출생. 1915 강진보통학교 졸업 1917 휘문의숙(徽文義塾) 입학 1919 3·1 운동 직후 휘문의숙 중퇴, 강진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 1..

박목월 시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3인 공동 시집 {청록집}, 1946)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 중학교 재학 중 동시 이 {어린이}에, 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 , 등이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결성, 조선 문필가 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 문학가 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 시인 협회 창립 1973년 {..

김소월 시 '산위에'

산(山) 위에 김소월 산(山)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면 가로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님 계시는 마을이 내 눈앞으로 꿈 하늘 하늘같이 떠오릅니다 흰 모래 모래 비낀 선창(船倉)가에는 한가한 뱃노래가 멀리 잦으며 날 저물고 안개는 깊이 덮여서 흩어지는 물꽃뿐 안득입니다. 이윽고 밤 어두운 물새가 울면 물결조차 하나 둘 배는 떠나서 저 멀리 한바다로 아주 바다로 마치 가랑잎같이 떠나갑니다 나는 혼자 산(山)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해 붉은 볕에 몸을 씻으며 귀 기울고 솔곳이 엿듣노라면 님 계신 창(窓) 아래로 가는 물노래 흔들어 깨우치는 물노래에는 내 님이 놀라 일어나 찾으신대도 내 몸은 산(山) 위에서 그 산(山) 위에서 고이 깊이 잠들어 다 모릅니다

박두진 시 '도봉'

도봉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김장호 시 '두타산'

頭陀山 김장호 주는 자는 안다 저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며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간을 떠나는 자는 안다 인간이 가진 것이 무엇이며 안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두타산에 오르면 내게 줄 것도 깨칠 것도 없다는 깨침. 그것은 三和寺뒤 武陵溪에 앉아서는 모른다. 未老川 天恩寺 터전에서 쳐다보기만 해서는 모른다. 땀을 흘리며 인두겁을 벗으며 용추폭을 거슬러 신령스러운 나비의 주검도 보고 문간재를 기어올라 망군대,청옥산 박달령을 건너질러 두타산 정수리에 머리카락을 날려본 자의 눈에만 보인다. 발아래 구비구비 푸샛 것들을 보듬고 정선골을 누비며 아리아리 아리리 젖줄을 물려주는, 주는 자의 기쁨 깨친 자의 비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