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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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무 / 먹낭(먹처럼 검은 나무)이 변한 나무 이름

먼나무 먹낭(먹처럼 검은 나무)이 변한 나무 이름 목, 과 : 노박덩굴목, 감탕나무과 개화 : 6월 결실 : 11~12월 높이 : 10~20m 분포 : 한국, 중국, 일본 제주도 서귀포에 가면 가로수로 심은 나무로 빨강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늘 푸른 나무가 있다. 서귀포 사는 친구에게 물었다. 저게 뭔 나무냐고 물었더니, 먼나무라 한다. 먼나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게 먼나무인 것은 몰랐다. 이번에 추자도에 갔더니 최영장군사당 앞에 먼나무가 있었다. 또 그 친구에게 물었다. 이게 먼나무냐고. 그 친구 답 왈. 이게 먼나무다. 먼나무는 바닷가 숲에서 자라는 늘 푸른 큰키나무다. 키가 5~10m 자라니 키가 크다. 어린 가지는 먹처럼 검은 나무란 뜻인 '먹낭'이라는 제주 말에서 나와 먼나무가 되었다..

영주산 / 성읍 민속마을 뒷산

제주의 오름 영주산(瀛洲山) 성읍 민속마을 뒷산 표고 326m, 비고 176m, 둘레 4,688m 오름 이동 거리 2.3㎞. 소요시간 1시간 8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 1리 (2018.11.7) 오름은 '작은 산'을 뜻하는 제주 말이다. 지질학적으로는 기생화산을 이른다. 제주에서 368개의 오름을 오르내리는 것은 땅의 파노라마를 즐기는 멋진 일이다. 오늘은 성읍에 있는 영주산이다. 성읍은 제주 동부 오름의 시작점이요, 그 대장 오름이 영주산이다. 한라산의 다른 이름도 영주산이다. 신령이 살고 신령스럽다고 영모루, 영머리라 하던 것을 한자로 영지(瀛旨)로 하였고, 다시 영주산으로 바꾼 것으로 본다. 성읍의 영주산도 신성한 산으로 여겨 붙은 이름일 것이다. 영주산은 표고 326m 비고 176m로 그리 ..

추자도 올레 ② 산길과 해안길을 걷는 섬 둘레길

추자도 올레 (올레길 18-1길) ② 산길과 해안길을 걷는 섬 둘레길 제주시 추자면 (2018.11.6) 예초리 돈대산 입구-예초기정길-신대산전망대-황경한의 묘-모진이해수욕장-신양항-묵리 고갯길-담수장-추자교-추자항 (11.2㎞. 이동 3:53, 휴식 0:36. 계 4:29) 11.5~11.6. 총 이동거리 21.7㎞. 이동시간 8:05, 휴식 1:59. 합계 10:04 모진이해변 해맞이로 아침을 시작하였다. 바다 일출은 해무가 있어 선명한 해맞이가 어려울 수 있으나 다행히 수면 바로 위로 뜨는 맑은 해를 볼 수 있었다. 예초리 돈대산 입구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엄발장사가 횡간도 섬으로 건너뛰다가 미끄러져 죽었다는 엄바위 장승을 지나면 예초리 바닷길이다. 홍합과 물고기를 걷어올리고, 젓갈을 담은 통..

추자도 올레 ① 상추자 하추자를 넘나드는 섬 둘레길

추자도 올레 (올레길 18-1길) ① 바람이 머무는 섬, 상추자 하추자를 넘나드는 섬 둘레길 제주시 추자면 (2018.11.5) 추자항-최영장군사당-봉글레산-후포-용웅덩이-나바론하늘길-등대산전망대-발전소-추자교- 묵리 고갯길-돈대산 해맞이길-돈대산 입구 (10.5㎞. 이동 4:12, 휴식 1:23. 계 5시간 35분) 상추자도 나발론 하늘길 해안절벽 추자도는 바람이 머무는 섬이라는데, 10월까지 불던 바람은 달이 바뀌니 조용하다. 제주항에서 가는 배는 400명 정도가 타는 배인데 꽉 찼다. 동티베트 스꾸냥산에 같이 갔던 선배도 배에서 우연히 만났다. 제주섬 속의 섬 추자는 여행 맛이 나는 섬이다. 추자도 올레는 제주올레의 곁가지다. 한 바퀴 17.7㎞를 도는데 6~8시간 걸린다는데, 아름다운 섬을 주마간..

소래습지 / 바다습지 갈대밭길

소래습지 바다습지 갈대밭길 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습지생태공원 (2018.10.31) 소금창고 인천 소래포구 부근 소래습지로 갔다. 람사르협약에 따르면 습지는 깊이가 6m가 넘지 않는 물에 잠긴 땅이고, 늪은 깊이 1~3m인 물웅덩이로 역시 습지의 한 종류이다. 소래 갯벌은 8천년의 형성 역사가 있다는데, 주변을 개발하고 매립을 하면서, 수로 폭이 좁아져 갯골에 바닷물이 잘 드나들지 못하고 있다. 만조 수위가 9m 정도 넘어야지만 갯벌로 바닷물이 올라온다니 조개류가 없고, 염생식물류도 적다. 아랫쪽으로 내려가면 갯내음은 그리 나지 않지만 질퍽한 갯벌 사이로 오리가 놀고 있다. 물길이 낮아지면서 갈대가 생기고, 갈대를 싫어하는 철새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갈대밭이 넓지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

시흥 갯골 / 폐염전 바닷길

시흥 갯골 폐염전 바닷길 경기도 시흥시 갯골생태공원 (2018.10.31) 갯골안내센타-자전거다리-바라지대교-갯골안내센타 (약9.4㎞. 2시간) 시흥에 있는 갯골로 나갔다. 가을이 가고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린다. 갯골은 소래염전이 폐염전이 되고 소래습지 안쪽에 있는 갯골을 가꾼 곳이다. 갯골에 물길이 드나든 흔적이 있으나 새들이 드나들 뿐 배들은 물길이 낮아 들어오지 못한다. 소래염전은 1934년에 조성하여 천일염을 생산하던 곳이었으나 1996년 폐염전으로 소금 생산을 중단하였다. 시흥갯골은 자연 생태를 보전하고자 마련한 공원으로 국가 해양습지보호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무한한데 지금은 휴식 공간이 되었다. 칠면초가 갯벌 곳곳에 퍼져 있다 방산대교 건너편은 소래습지이다

지열곡 / 신베이터우 온천지대

대만 여행 10 지열 곡(地熱谷. 디러구)신베이터우(新北投) 온천지대 신베이터우 베이터우취(北投區) 중산루(中山路) (2018.10.23)    신베이터우에는 온천지대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치료와 휴양을 위해 개발하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발견한 베이터우석(北投石)은 미량의 방사선 라듐이 함유되어 있어 치료효과가 높다고 한다. 고궁박물관에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냇가를 따라 걸어가면 온천박물관이 있고, 물길을 따라 아열대지역 거목들이 줄을 섰다. 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냇가 좌우로 온천들이 있다. 좌우로 연결된 데크가 끝나는 곳에는 유황냄새가 코 끝에 강렬하게 들어오는 지열곡(地熱谷)이 있다. 말 그대로 펄펄 끓는 물이 내려온다. 온도가 90℃ 정도라니 손을 담글 수도 없다..

고궁박물원 (3) 도자기, 흙으로 빚어낸 장인의 솜씨

대만 여행 9 고궁박물원 - 중국 5천 년 역사가 숨 쉬는 곳(3) 도자기, 흙으로 빚어낸 장인의 솜씨 타이베이(臺北) 시,   중국의 도자기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다. 흙으로 일상생활의 기품을 빚어낸 중국 도자기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도자기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장인 정신으로 빚어낸 솜씨라는데, 그 옛날부터 음식을 갈무리하고 펼쳐 놓는 때부터 있어온 일이고, 시대마다 저마다의 솜씨가 다르다. 그밖에 서예와 회화를 관람하였다. 진나라 왕희지의 글씨와 송나라 고종이 두루마리에 쓴 글씨가 있었고, 그림은 송나라 범관의 주림비목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글씨와 그림 13점이 모두 중국의 국보다. 다만 서화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여 정리하지 못하였다.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으로 본 관람 시간이었으나 모..

고궁박물원 (2) 청동기 공예품의 미

대만 여행 8 고궁박물원 - 중국 5천 년 역사가 숨 쉬는 곳(2) 청동기 공예품의 미 타이베이(臺北) 시, 즈산루(至善路) (2018.10.23)   선사시대 역사 구분법으로 문명의 발전 단계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배열한다. 청동기 생산으로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고, 군사력이 켜졌으며, 사회 발전으로 직업이 분화되었다. 지역별로는 청동기시대가 다르다. 중국의 청동기시대는 은나라, 주나라, 춘추전국까지를 들고 있어, 년도로는 기원전 1600년에서 기원전 4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한반도 청동기시대는 중국보다 100년 정도 뒤인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는 고조선 시대 이전을 말한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니 동(구리)과 다른 금속이다. 일상용품으로 청동을 만들어..

고궁박물원 (1) 옥조각, 신비하고 오묘한 솜씨

대만 여행 7 고궁박물원. 중국 5천 년 역사가 숨 쉬는 곳(1) 옥조각, 신비하고 오묘한 솜씨 타이베이(臺北) 시, 즈산루(至善路) (2018.10.23)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입구    1965년에 건립한 대만의 고궁박물원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이다. 장제스(蔣介石)가 1949년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건너올 때 가지고 나온 유물들이다. 중국 자금성을 가르키는 고궁에 있었던 유물을 가지고 나온 것이라 이름을 그대로 고궁이라 쓰고 있다. 1933년 일제의 침략으로 도난과 유출을 우려한 국민당 정부가 1933년부터 도시에서 도시로 옮기며 소중하게 보관한 65만여 점의 유물이 이곳에서 숨 쉬고있다. 한꺼번에 전시할 수가 없어, 3~6개월마다 전시한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