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 216

황희 정승 아들 술버릇 고치기

황희 정승 아들 술버릇 고치기 조선 세종 때 명재상 황희(黃喜)는 아들이 넷이 있었다. 그중 한 아들이 술을 많이 하였다. 아무리 타일러도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하루는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황희 정승이 마당에서 기다렸다. 옷자락이 이슬에 다 젖도록 서 있는데 술 취한 아들이 그제야 비틀거리며 마당에 들어섰다. 황희 정승은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아들을 맞이 하였다. "어서 오십시요" 술에 취한 아들이 인사를 받고 보니 아버지였다. 정신이 버뜩 들었다. "아버님 안 주무시고 어인 일이십니까?" 황희는 아들을 정중히 맞아들이며 답하길, "세상에 자식이 아버지 말을 듣지 않으면 한집안의 식구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는 자식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내 집에 들어온 ..

소설가 박완서와 아버지

소설가 박완서와 아버지 맛깔스러운 소설을 쓰는 박완서 선생님이 올해 초 돌아가셨다. 선생님의 이력과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어보면 아버지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동 시대를 살아간 분들이 다 그러한 경험을 하신 분이 꽤 있었겠지만, 나의 입장에 견주어 그렇다는 것이다. 6.25 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 박완서선생님은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셨고, 아버지도 그 해에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입학하여 전쟁으로 두 분 모두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전쟁은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피난을 가거나 피난을 가지 않거나 가혹한 시기였다. 박선생님 같이 서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겐 암흑과 이별, 몇 달 사이로 피아가 바뀌는 치하에서 지내기란 참으로 두렵고 ..

법정스님 8. 무소유

다시 읽어보는 법정스님 말씀 8 - '무소유' 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님이 열반하셨다. 사람들 마음을 늘 맑게 하였던 스님이셨다. 마음에 닿았던 아름다운 말씀을 기억하고자 법정스님께서 지은 책에서 스님의 말씀을 정리하였다. ○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다. ○ 강변에 다다르자 배가 저만큼 떠난다면 '너무 일찍 나왔군' 하고 달래면 편하다. 다음 배편이 내 차례인데 미..

떡국을 준비하며

떡국을 준비하며 어릴 때 설이 되면 어머니가 바구니에 담아준 쌀을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가래떡을 뽑아 왔다. 기계에서 나오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을 손으로 동강동강 나누어 찬물에 내리는데, 어쩌다 방앗간 아저씨가 잘라주는 가래떡을 받아 먹으면 뱃속까지 뜨뜻하였다. 요즘은 어머니가 매년 보내는 가래떡을 집에서 식구가 같이 썬다. 작년에는 아내가 팔목이 아파 혼자 다 썰었는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떡국은 설에 먹는 세시음식(歲時飮食)이다. 새해 첫날 밝음과 깨끗함의 의미로 흰떡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신성함이 있고 희고 길어 장수를 의미한다. 육당 최남선이 지은 '조선상식문답'에 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은 상고시대 이래 제사 때 쓰던 음복음식(飮福飮食)에서 유래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설날..

퇴계종택 사랑채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의 뜻

퇴계종택 사랑채 현판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의 뜻 퇴계종택 바깥 채에 붙어 있는 현판이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다. 같이 동행하였던 친구(옥야 박인우)가 그 뜻을 보내왔다. 주자(朱子)의 재거감흥(齋居感興) 이십수(二十首) 가운데 제10수 恭惟千載心 삼가 천 년의 마음을 살피건대, 秋月照寒水 가을 달이 찬 강물을 비추는 듯하네 魯叟何常師 노수(魯叟, 朱子)의 스승 어찌 한 사람만 있으리요 刪述存聖軌 성현께서 전해 주신 서책이 모두 스승일세 (御纂朱子全書 卷66, 『晦庵集』 卷4) 추월한수(秋月寒水) : 가을 달처럼 티끌 한 점 없이 맑기만 하고, 차가운 강물처럼 투철하고 명징(明澄)한 현인(賢人)의 마음 경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 시는 마치 중용 서문을 읽는 것과 같다. 퇴계종택 퇴계종택 사랑채 ..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2010.12.2) 아침에 사무실에 가기 위해 서울지하철 2호선을 탔다. 나는 짜투리 시간에 책을 펴서 읽고 있었다. 성수역을 지나서 일흔다섯은 되어 보이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어렵게 사는 노인 한 분이 지하철에서 모은 신문을 가지런히 묶어서 어깨에 짊어지기 위해 젊은이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노인은 자세를 낮게 하고 두 청년이 일어나 어깨 끈을 팔에 끼워 드리고, 노인은 무거운 짐을 겨우 등에 지고 난 뒤 출입문 옆 의자 가로막에 기대려고 혼자 얹기 시작하였다. 삐죽 나온 신문이 방해를 하여 쉽게 올려 놓지 못하자 또 다른 청년이 달려와 거들어서 자세가 불안전하지만 겨우 올려 놓았다. 그런데, 노인은 내리지는 않고 계속 짐을 지고 있었다. 나중에 짐을 올리는..

완당평전 2 / 완당 김정희에 대한 삶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접근

완당평전 2 / 유홍준 지음 (학고재. 408면) 완당 김정희에 대한 삶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접근 제주에 유배 중에도 글씨 부탁을 받은 완당은 종이도 없고, 내용 검증도 해야 하고, 눈이 침침하고 건강이 나빠져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 들어주려 하였다. 그러면서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라 하였다. 그는 지필묵이 맞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았다. 완당은 70 평생 벼루 10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제주 유배시절 세월이 갈수록 추사체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금석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완당의 예술세계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견해가 완당시절부터 있었다. 단연 죽로 시옥 (端硯 竹爐 詩屋) / 완당이 전서와 예서를 섞어 쓴 명작으로, ..

완당평전 1 / 완당 김정희에 대한 삶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접근

완당평전 1 / 유홍준 지음 (학고재. 408면) 완당 김정희에 대한 삶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접근 판전 / 추사가 죽기 3일 전 쓴 글씨로 고졸한 가운데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는 명작 (봉은사 소재) 추사 김정희 (1786~1856) 추사 김정희는 최고의 서예가이고, 금석학과 고증학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고, 학문은 경학 중 주역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불교의 선지식이 높았으며, 문인화의 대가였기에 접근하기 힘든 산이었다. 완당이 경학의 대가인 것은 일본인 학자 후지츠카가 밝혔다. 세상에서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하였다. 추사를 함부로 논하기 힘든 이유는 추사의 글씨인 추사체가 어렵다는데서 시작한다. 완당 그림 불이선란도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로 경주 김 씨 월성 위이고, 아버지..

화인열전 2 / 한국미술사 대표화가 8인 인생역전

화인열전 2 / 유홍준 지음 (역사비평사) 한국미술사 대표화가 8인 인생역정 현재 심사정 / 능호관 이인상 / 호생관 최북 / 단원 김홍도 책을 구하고자 하였더니 화인열전은 이미 절판되고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먹었다. 세상의 책을 내가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고, 책을 내 서재에 다 모을 수는 없는 것이니, 마음에 드는 책을 볼 수 있으면 되는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대신에 책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두고 보기로 하였다. □ 현재 심사정 (玄齋 沈師正 1707~1769) - 문인화를 토착화한 고독한 선비화가 현재 심사정 '딱따구리' (개인 소장) 영조시대 그림은 3재(齋)인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이 진경산수와 속화와 문인화를 이끌고, 훗날 3원(園)인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